기필코 좋은 시를 써야겠다
섬진강 변 녹차밭 대밭 옆으로 이사 온 뒤
집들이 꽃놀이 밤새 너구리처럼 술만 퍼마시다
뒷집 소녀 때문에 시를 써야겠다
평균 연령 71세의 강마을에
쫑알쫑알 아이 목소리가 들려
필름 끊긴 창문을 열고 헛기침을 하니
강아지 얼씨구와 놀던 아홉 살 소녀
먹포도 두 눈을 반짝이며 인사를 한다
아찌, 정말 시인이세요?
두 눈이 빨개, 밤새 시 쓰다 나왔어요?
슬그머니 눈곱을 닦으며
마침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생 단 한 편의 좋은 시를 써야겠다
오로지 뒷집 귀농자의 딸 가연이 때문에
스무 살 적엔 구례에 살고 싶었지요. 아홉 가지 예를 갖춘 마을, 이름만으로 이상향이라 생각했습니다. 섬진강 마을을 따라 산수유 매화 벚꽃 차례로 피고 살구꽃 복숭아꽃 자두꽃 한참입니다. 강물 위에 분홍색 살구꽃과 연두색 자두꽃 은은히 잠긴 모습 환상이지요. 강물은 흘러도 마을 떠나기 싫은 꽃은 물살 위에 그대로 머뭅니다. 시인이 구례에 이사 왔으니 밤새 술 마실 만합니다. 시도 사랑도 삶도 녹록지 않을 땐 술 만한 친구가 있겠는지요. 술 덜 깬 아침 가연이가 아찌 정말 시인이세요? 묻는군요. 구례에 왔으니 아홉 가지 예를 갖춘 인간의 시를 꼭 쓰라는 격려의 말입니다.
곽재구 시인
2021-04-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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