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근처 작은 산그늘
오늘도 그 농가의 뜰에
히레를 흔들며 나를 부르는
한 그루의 홍매화 오오 봉주르
오늘은 또 어제보다 아름답다
그대의 나무 그늘로 채소밭 오솔길로 가자
거기에 주인은 무릎을 꿇고 소 발굽을 훔치고 있다
바다가 들리는 농가의 뜰
20년 동안 머물렀던 학교의 주소는 매곡동 315번지였다. 매화 피는 골짜기라는 이름답게 이곳 사람들은 집집마다 매화를 심고 골목에도 매화를 심었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가로수로 홍매화를 심었으니 향기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에는 세상일을 잊을 만하였다. 그 주소가 어느 날 중앙로 525번지로 바뀌었다. 매화로 525번지로 바꾸었으면 좀 좋았을까. 농부는 일 년 농사를 준비하며 소 발굽을 훔친다. 뜰에 핀 홍매화를 보며 오늘은 또 어제보다 아름답다고 중얼거린다. 홍매화 꽃그늘 아래 서 있으면 오늘 쓸 시는 어제 쓴 시보다 아름다울 것 같다. 히레는 옛 일본의 부인들이 외출할 때 어깨에 드리운 길고 얇은 천이다.
곽재구 시인
2021-03-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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