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봄날의 부처님/김애리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봄날의 부처님/김애리나

입력 2021-03-18 17:34
수정 2021-03-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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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부처님/김애리나

쉿 부처님 주무시는 중이세요

햇살이 부처님의 이마에 키스하고파

법당 안을 기웃대는 봄날이었지요

졸립지요? 부처님 그래도 봄인데

나들이는 못 갈망정 마당 가득 피어난 꽃나무 좀 보세요

산사나무 조팝나무 매자나무 꽃들이 치마를 올리고

벌써 바람을 올라탈 준비를 하는 걸요

꽃가루 가득 실은 바람과 공중에서 한바탕 구르다

주워 입지 못하고 올린 치마들이 노랗게 땅을 수놓는 걸요

화나셨나요, 부처님? 왜 오롯이 눈은 감고 침묵하세요

이 봄에 관계하지 못한 생이란 울기만 하는 걸요

보세요 대웅전 계단 옆 고개 숙인 한 그루의 불두화를

(중략)

천년이 넘게 한 세상 굽어만 보시는 부처님

오늘처럼 법당에 둘이만 있는 날에는

당신 한번 넘어뜨리고 싶은 마음 아시는지

헛 헛 기침하시네요 토라져 눈 감으시네요

긴 손 뻗어 몇날 며칠 불두화의 눈 감겨주시니

아 그제야 봄 저무네요 절름발로 지나가네요

꽃 화사하게 피는 봄날 법당의 부처님은 좀 답답하시지 않을까. 내 손 잡고 꽃피는 들판에 소풍 가면 좀 좋지 않으실까. 이제 막 신춘문예에 당선된 청춘의 도발에 부처님이 빙긋이 웃으실 것 같다. 세계에 대한 담대한 도전과 상상력의 꿈. 신인의 시가 지녀야 할 덕목이라 할 것이다.

곽재구 시인
2021-03-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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