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박인혁
50×70㎝, 캔버스에 혼합매체, 2020
천의 주름을 활용한 입체회화. 12월 5일까지 웅화랑 개인전
천의 주름을 활용한 입체회화. 12월 5일까지 웅화랑 개인전
나는 안다
이웃집 옥탑방에 걸려 있는 양말 한 짝이
바람 불어 좋은 날 하릴없이 펄럭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누군가가 안쓰러워진 양말짝에 기러기표 부표를 달아주면
구만리장천으로 날려 버릴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는 것을
순천 아랫장에서 토종 귀리를 발견하고 반가웠다.
‘해정한 모래부리 플랫폼에선/ 모두들 쩔쩔 끓는 구수한 귀리차를 마신다’ 백석의 시를 처음 읽을 때, 언젠가 함남 도안에 가서 꼭 귀리차를 마시고 싶었다.
귀리 한 됫박을 사 들고 동천 강변을 따라오는데 철새들이 강물 위에 오붓이 모여 있다. 청둥오리도 가마우지도 하얀 물새들도 있다.
징검다리에서 벗어난 바위 위에 귀리를 반 됫박 붓는다. 새벽녘 인적이 없을 때 식사하세요. 철새들이 튼실한 알곡으로 아침 식사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빨랫줄에 걸린 양말 한 짝에 시인은 기러기표 상표 하나를 달아 주고 싶다. 기러기처럼 훨훨 날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다.
생명 없는 허름한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시인의 마음, 따뜻하고 우아하다.
곽재구 시인
2020-11-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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