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엔 깊은 바다 냄새가 난다
기억의 밑바닥에 움츠리고 있다가
융히 부상하여
왜 나를 돌아보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낙동강 하구 모래톱 같은 날들이 흘러도, 흐르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눈 비비고 부스스 일어나
도끼눈 뜨고 흘겨보는 진드기여
태생부터 달랐다 두메에서 나고 자란 나와
비 오는 날 흙탕물 질펀한 인사동 어느 골목길이었던가
술 귀신이 데려온 느닷없는 입맞춤이여
코 막고 엉겁결에 넘어버린 선이여
그렇게 비린내와 함께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두부모는 잘라져도
기억은 칼이 감당할 수 없었다
사라진 듯하다가 돌아오고
쓸려 간 듯하다가 밀려왔다
비라도 부슬부슬 내리면
첫사랑은 오묘한 향기를 풍기고
나는 하릴없어
너를 만나러
얼큰한 첫사랑을 뵈러 간다
첫사랑이라는 말은 인간과 동의의 개념이다. 첫사랑이 없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어머니는 모든 인간의 첫사랑이며 살면서 대상은 확산된다. 좋아하는 그림 여행 신 향수 영화 시. 궁핍한 이들을 위한 배려와 관심. 모두 첫사랑의 스펙트럼 안에 있다. 깊은 밤 홀로 서식지를 배회하는 짐승. 사막의 오아시스에 핀 꽃. 모두 첫사랑을 그리워하는지 모른다. 시인은 삭힌 홍어를 먹으며 첫사랑을 떠올린다. 독한 암모니아 내음 속에서도 첫사랑의 기억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첫사랑이라는 단어가 있으므로 인류는 22세기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곽재구 시인
2020-07-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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