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천변 아이/박준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천변 아이/박준

입력 2020-07-16 17:42
수정 2020-07-17 14:02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천변 아이/박준

게들은 내장부터 차가워진다

마을에서는 잡은 게를 바로 먹지 않고
맑은 물에 가둬 먹이를 주어 가며
닷새며 열흘을 더 길러 살을 불린다

아이는 심부름 길에 몰래
게를 꺼내 강물에 풀어준다

찬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에 가는 한밤에도

낮에 마주친 게들이 떠올라
한두 마리 더 집어 들고 강으로 간다.

슬프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 속의 아이와 겹쳐지는 내 어린 시절 추억은 없다. 월사금을 내지 못한 아이들을 선생은 집으로 돌려보냈고 집에 가봐야 돈 나올 구멍이 없는 것을 훤히 아는 아이는 천변에 쭈그리고 앉아 나뭇잎 배를 접었다. 나뭇잎 배 위에 개미 몇 마리를 태워 보내며 좋은 곳으로 가렴, 중얼거렸다. 천변에 국극단이 들어온 날이면 이수일과 심순애를 보고 늦은 오후 빈 교실로 가 가방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밤에 화장실에 가다가 어린 게 몇 마리를 꺼내 들고 강으로 가는 아이. 강으로 돌아간 게들은 어른이 된 아이의 시 속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윤회,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곽재구 시인
2020-07-17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출산'은 곧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가
모델 문가비가 배우 정우성의 혼외자를 낳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에 많은 충격을 안겼는데요. 이 두 사람은 앞으로도 결혼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산’은 바로 ‘결혼’으로 이어져야한다는 공식에 대한 갑론을박도 온라인상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출산’은 곧 ‘결혼’이며 가정이 구성되어야 한다.
‘출산’이 꼭 결혼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