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처녀 적부터
일본 사람이 경영하는
생사 공장의 여공이었다
누에가 걸쳤던 새하얀 비단실 뽑아 올리면
펄펄 끓는 물 위에
기름 번지르르한 노오란 번데기가
다투어 둥둥 떠올랐다
해는 왜 그리 길고
배는 왜 그리 고픈가
현장 감독의 눈을 피해 졸고
졸면서 번데기로 배를 채웠다
힘없어 애 못 낳는 여자
한 말만 먹으면 애를 낳고 만다는
그 번데기 때문인지
열일곱에 서른다섯 노총각 스님에게
업혀 와서 칠 남매 낳으신 뒤에도
어머님은 생사 공장의 여공이었다
6ㆍ25가 끝난 한참 후에까지
신은 세계를 창조하고 2%가 부족해 어머니를 만들었다 하지요. 어머니는 내 생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다음해였으니 생일을 기억할 정신 어디 있었겠는지요. 추석이 지나고 첫서리 내린 날 저녁 밥숟가락을 놓은 뒤. 어머니가 기억한 내 생일입니다. 저녁 밥숟가락 놓은 뒤, 라는 말에 나는 안도의 숨을 쉽니다. 다행이야, 밥을 굶지는 않았으니. 황숙기가 끝나고 무논에 모심기하던 사람들이 개밥바라기 별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유월, 어머니는 별이 되었습니다.
곽재구 시인
2020-06-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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