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의 손을 놓고 가버렸을 때 저녁이 왔고 걸어서 집에 도착할 시간에 초승달이 졌다
어둠이 내리고 고요가 쌓여가는 동안 능선 아래의 칠흑과 능선 위의 푸르스름함을 보았다
오래 서서 ‘저 능선 굴곡 따라 난 걸어왔어’라고 외쳐본들 역시 혼자다
밤새 안개는 뒤척이고 숲은 축축하고 나무는 잎을 키우며 허리가 휘었지만 별들은 무사히 제 길을 지나갔다
만날 수 없거나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호기심과 서운함을 달랠 사이도 없이 새벽이 왔다
아침 동산을 보면 태양보다 숨은 초승달이 먼저 눈에 그려진다
순천 웃장에서 토마토 모종 두 대를 1000원에 샀다. 모종 파는 아줌마가 참기름집에서 깻묵을 얻어 깔고 심으면 잘 자랄 거라 했다. 철물점에서 양동이 하나를 사 산기슭 부식토를 가득 넣고 모종을 심었다. 한 달 반 뒤면 주먹만 한 토마토가 열릴 거야. 샐러드도 해 먹고 시를 쓴 뒤 간식으로도 먹을 거야. 자루에 담을 만큼 많이 열리면 어떡하지? 여기저기 나눠 줘야 할 곳 생각이 났다. 초승달이 뜨는 시각은 신비하다. 일 년에 한 번 샛별이 초승달 위에 얹힐 때면 더욱 신비하다. 토마토 모종에 토마토가 열리면 토마토의 이름을 초승달이라 할 것이다.
곽재구 시인
2020-05-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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