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운-화려한 풍경
130x97㎝, 캔버스에 아크릴, 2019. 갤러리나우.
풍자와 해학으로 일상을 담아내는 현대의 풍속화가
풍자와 해학으로 일상을 담아내는 현대의 풍속화가
버스에서 혹은 어느 집회소에서
당신은 내가 앉았던 자리에 와 앉는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누구라는 걸 몰라도 좋다
밤거리를 또는 어두운 다리 위를
당신은 내가 거닐던 곳을 지나간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누구라는 걸 몰라도 좋다
그러면 그런대로 좋은 이여
우리 서로 이렇듯 가깝고도 먼 서러운 별들
나도 당신이 앉았던 자리에 와 앉고
당신이 거닐던 곳을 지나쳐도
당신이 누구란 걸 모르고 지내리
그러면서 때로 나는 술을 마시며 살리
그리고 때로는 웃기도 하며 살아가리
세상의 누군가에게 당신이라고 가만히 불러볼 때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누구라는 것 알지 못하지요. ‘당신’이라는 말 속에 시냇물 흐르고 보리피리 소리 들립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앉았던 자리에 가만히 앉아도 보고 나도 당신이 앉았던 자리에 조용히 앉습니다. 마치 당신이 바라본 별이 어느 별인지 모르고 내가 바라보는 것처럼. 당신이 거닐던 거리를 오늘 내가 걷습니다. 당신이 마신 술 이름 모르지만 세상 어느 주점에는 당신이 남기고 간 술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습니다.
곽재구 시인
2020-04-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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