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나는 너다 182/황지우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나는 너다 182/황지우

입력 2020-03-26 17:24
수정 2020-03-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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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상생-관계
임효/상생-관계 73×60.5cm, 수제한지에 수묵, 염색. 2004
홍익대 미술대 졸업.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수상
나는 너다 182/황지우

비오는 날이면, 아내 무릎을 베고 누워, 우리는 하

염없이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젤 좋아하는 노래는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는 동요이다

그 방주 속의 권태롭고 지겨운 시절이, 이제는 이

지상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지복한 틈이었다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라 화엄의 넓은 세상

들어가도, 들어가도, 가지고 나올 게 없는

액체의 나라

나의 오물을 지우는, 마침내 나를 지우는 바다

지상에서 처음 마련한 차, 르망 스페셜이었다. 시쟁이 그림쟁이 다섯 타고 성철 스님 다비식 갔다. 돌아오는 비포장 길 펑크가 났다. 핸드폰 없던 시절. 한 시쟁이가 공구함을 꺼내 타이어 교체를 시작했다. 땀 뻘뻘 흘리며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 보기 좋았다. 지복인 줄 모르고 스쳐 보냈던 순간들. 그 순간이 문득 화엄의 순간으로 다가오는 때 있다. 들어가도 들어가도 가지고 나올 게 없는 액체의 나라. 나의 오물을 지우고 마침내 나를 지우는 나라. 차체 아래 들어가 타이어의 나사를 조이던 시쟁이, 그 무렵 이 시를 썼다.

곽재구 시인
2020-03-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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