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김종학
60.6×72.7cm, 캔버스에 오일, 2008
전 서울대 미대 교수. ‘설악의 화가’, ‘꽃의 화가’로 유명.
전 서울대 미대 교수. ‘설악의 화가’, ‘꽃의 화가’로 유명.
동네 입구 꽃집 구석에는
잔가지들을 함부로 거느린 나무가 있어서
오고 가는 길에 볼품없더니 산앵두나무란다
산을 버리고 꽃집 구석의 화분에
발목도 없이 웅크리고 앉아
제 몸을 파는 산앵두나무
한철 노숙을 제 얼굴에 드리우고 있어서
많이 야위었다 여기었더니
삼월 어느 저녁엔 나를 불러 연두 주먹을 내보인다
이내 주먹을 펴 보인다
다음엔 필경 분홍의 무언가를 낼 심사인데
나는 연두도 분홍도 못 되는
기껏 빈 손바닥을 쳐다보다가
무엇을 내도 필패이려니 싶어
그냥 그 나무 옆에 집 없는 사람처럼
서 있다가 왔다
젊은 시인은 꽃집 구석에서 만난 산앵두나무와 가위바위보 하려다 멈춥니다. 처음엔 꽃 아직 안 핀 산앵두나무가 어리숙해 보여 가위바위보를 하면 이길 것 같았지요. 그 순간 자신의 삶 생각합니다. 집, 사랑, 결혼, 직장, 여행…. 모든 싸움에서 이긴 적 없습니다. 산앵두나무와의 가위바위보 또한 필패하지 않겠는지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궁핍과 사랑. 젊은 날 시인이 운명적으로 사랑하고야 말 덕목 아니겠는지요. 나 가위바위보 하면 꼭 져 줄 착한 물앵두나무들 꽃피는 마을 알고 있지요. 오세요, 봄에 그곳에서 우리 가위바위보 해요.
곽재구 시인
2020-03-13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