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태양 아래로 가라, 기교를 부리지
말고 죽어라, 집을 무너뜨려라
망설이지 마라 나의 회색빛 돌고래는
저편 해안으로 헤엄쳐 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돌고래는 자기 앞으로 바다를 불어내었고, 갖은
재주를 피우며 헤엄쳤다 물결이 철썩였다
이제 돌고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해안은
소금딱지로 변했고 텅 비었고
돌고래를 잃어버렸다는 소문이다, 어느 누구도
이제 출구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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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키르시는 분단 시절 동독의 시인이다. 분단의 아픔을 밝고 투명한 상상력의 언어로 노래했다. 독일이 한 몸이었을 때 돌고래는 끝없는 해안을 따라 헤엄쳐 갔다. 물살을 타는 몸짓은 자유로웠고 물을 뿜는 휘파람 소리는 아름다웠다. 파도의 집을 무너뜨리고, 기교를 부리지 않고 살아도 좋았다. 한순간 독일의 해안은 소금딱지로 변했고 돌고래의 춤은 사라졌다. 어느 누구도 출구를 알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이 찾아온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렇다. 돌고래의 춤은 사라지고 사랑 잃은 허탈한 사람들이 반도의 좁은 땅 안에서 헛기침을 한다.
곽재구 시인
2020-02-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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