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산에 가서 밤을 주웠다
밤이 너무 너무 많았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주웠다
재미나서 힘든 줄도 몰랐다
점심 먹고 삼밭에 갔다
사반리 삼밭에 가서 지붕을 내리고
봉고 타고 대산 삼밭에 가서 지붕을 내리고
또 봉고 타고 나성 삼밭에 가서
또 지붕을 내렸다
사만 원 받았다
돈이 사람 죽인다
멀미 나서 죽을 뻔했다
저녁 먹고 학교에 왔다
***
고창군 해리면의 바닷가에 나성리라는 마을이 있다. 비단 라(羅), 별 성(星). 별들이 비단처럼 펼쳐진 마을,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 마을의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에 서울에서 출판쟁이를 하던 부부가 내려와 책마을 도서관을 열었다. 정춘자 할머니는 이 도서관을 학교 삼아 글도 배우고 시도 쓰게 되었다. 봉고차에 몸을 싣고 이 마을 저 마을 삼밭을 쫓아다니며 지붕을 내리고 일당 4만원을 받는다. 돈이 사람 죽인다는 말 아프게 다가온다. 좋은 시는 망치와 끌로 마음 안 지석에 깊은 홈을 낸다. 나성리 곁 동호나 구시포에서는 서해의 노을을 보며 백합조개로 끓인 담백한 죽을 먹을 수 있다.
곽재구 시인
2019-12-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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