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가을 밤 줍기/정춘자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가을 밤 줍기/정춘자

입력 2019-12-19 17:22
수정 2019-12-20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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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밤 줍기/정춘자

오늘 아침 산에 가서 밤을 주웠다

밤이 너무 너무 많았다

피곤한 줄도 모르고 주웠다

재미나서 힘든 줄도 몰랐다

점심 먹고 삼밭에 갔다

사반리 삼밭에 가서 지붕을 내리고

봉고 타고 대산 삼밭에 가서 지붕을 내리고

또 봉고 타고 나성 삼밭에 가서

또 지붕을 내렸다

사만 원 받았다

돈이 사람 죽인다

멀미 나서 죽을 뻔했다

저녁 먹고 학교에 왔다

***

고창군 해리면의 바닷가에 나성리라는 마을이 있다. 비단 라(羅), 별 성(星). 별들이 비단처럼 펼쳐진 마을,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 마을의 폐교된 초등학교 분교에 서울에서 출판쟁이를 하던 부부가 내려와 책마을 도서관을 열었다. 정춘자 할머니는 이 도서관을 학교 삼아 글도 배우고 시도 쓰게 되었다. 봉고차에 몸을 싣고 이 마을 저 마을 삼밭을 쫓아다니며 지붕을 내리고 일당 4만원을 받는다. 돈이 사람 죽인다는 말 아프게 다가온다. 좋은 시는 망치와 끌로 마음 안 지석에 깊은 홈을 낸다. 나성리 곁 동호나 구시포에서는 서해의 노을을 보며 백합조개로 끓인 담백한 죽을 먹을 수 있다.

곽재구 시인
2019-12-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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