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기차가 들어오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던 11월/허수경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기차가 들어오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던 11월/허수경

입력 2019-10-31 22:24
수정 2019-11-01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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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봉선 / 松3
문봉선 / 松3 181×91㎝, 지본수묵, 2008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선미술상 수상
기차가 들어오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던 11월 / 허수경

집시들은 아직 떠나지 않았고
텐트 바깥에 걸어 놓은 빨래가 안개에 젖는데
기차는 들어오고

다리를 다친 새는 날아가지 못한다
두 손 안에 다친 새를 넣고
기차가 들어오던 걸 물끄러미 지켜보던 11월

이 철길에 며칠 전에 아주 젊은 청년이 몸을 던졌다
아내와 딸이 있는 청년이었다
기차를 몰고 가던 사람은 마치 커다란 검은 새가 창에 부딪힌 것 같았다고 울었다
기차가 길게 지나가는 길에는 우울증에 걸린 고양이와 개, 산돼지와 청년 실업자와
창녀와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보지 못한 가장이 있었지

그들의 영혼이 이렇게 안개의 옷을 입고 조용히 조용히
한 번도 추어 보지 못한 춤을 추는 것 같은 11월의 오후
마지막 순간에 텅 빈 항아리를 보는 것 같은 깊고도 깊은
검은 겨울을 바라보는 것 같은 11월의 오후

집시들은 아직 머물러 있고
새는 손안에서 따뜻한데
빨래는 흐느끼며 11월의 안개,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안개의 공기 속에서는 땅에서 썩고 있는 사과 냄새가 나고
새가 파닥이는데 기차는 떠나는데
어서 집으로 가야 한다
새를 치료하러
작은 종소리가 나오는 은은한 심장을 치료하러

***

11월이다. 손바닥 둘을 가만히 포개고 세상을 보자. 따스하지 아니한가. 손금에 고인 세월의 강물이 고요히 흐른다. 사느라 거칠어진 손바닥에 호, 입김을 불어 보자. 짝짝짝 두 손바닥을 부딪쳐 소리를 내 보자. 아메리카 인디언은 11월을 모든 것이 다 사라지지만은 않는 달로 부른다. 당신과 나는 살아 있다. 할 일이 무엇이지? 생각해 좋은 것이다. 허수경은 지난해 독일에서 생을 마쳤다.
2019-11-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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