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10분 먼저 태어난 친형이 있었다
나는 그를 형이라 부르기 억울해 아버지 앞에 있을 때만
엉아라 불렀다 엉아는 부친이 일찍 먼 걸음 하시자
책가방 집어 던지고 농사를 지었다
매년 농사를 지으면 쌀과 김장거리를 형제들에게
광천역 수화물로 보내주기도 했다
내가 거제도에 살 때는 주소를 거지도로 써 보냈는데도 쌀은 바다 건너
잘 왔다 그런데도 홀몸으로 천수답과 팔 남매 거두시던 어머니에게 효자 소리는 내 차지였다
식구들 논밭에 나가 일할 때 엉아는 시험공부 하라며
내 몫까지 도맡아 했다 성적표를 받는 날 식구들 중
엉아가 나보다 더 우쭐거렸다
엉아는 경운기에 손가락 두 개를 잃더니 큰 콤바인을
농협 대출로 샀다가 아버지께 물려 밭은 땅과 집까지
경매로 몽땅 날렸다 가끔 고향 가면 이빨과 눈이 아프다는 엉아에게
진통제 사다 주다 오서산 다람쥐였던 엉아가 이상해 큰 병원에 데려갔더니 뇌종양 말기였다
형수와 논밭 잃고 시름시름 지낸 5년 동안 얻은 병이다
절대 수술 않겠다고 우기던 엉아가 가장 환하게 웃었던 날은
나에게 속아 수술날짜가 잡힌 날이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욕을 시켜주고 면도까지 해주자
엉아는 살고 싶은지 웃다 울었다
엉아는 뇌수술을 받은 지 보름 만에 저세상으로 갔다
지금은 고아가 된 엉아의 두 아들이 고향을 지킨다
이번 설빔으로 옷가지 몇 벌을 사 갔더니 조카들이 너무
좋아했다 설 쇠고 고향집 나설 때 조카들이 냉장고에서
작은 봉지를 챙겨 주었다 엉아가 살아생전 꼭 챙겨주던
짜디짠 광천 어리굴젓이었다.
***
이 엉아 꼭 내 엉아 같다. 이 엉아들이 있어 소금기 많은 우리 땅 우리 삶이 지탱되지 않았겠는가. 남은 세월 당신도 나도 모두 광천 어리굴젓이 되자. 어리어리 비리비리한, 진정성 넘치는 생의 주인이 되자.
곽재구 시인
2019-10-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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