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 / 해.풍.홍(80x116.7㎝,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2)
제주의 역사를 화폭에 담는 화가, 옥관문화훈장
오늘밤 우리는 돌담 위에 셋이서 나란히 앉아 있어
이 자리에 걸터앉으면 당신 방 창문이 한눈에 다 들어오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의 옆모습 이 창 너머로 빤히 들여다보여
당신은 오늘따라 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않고 열심히 책을 읽고 있네
난 그 책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알고 있어
그건 어떤 섬에 관한 이야기야
난 그 섬을 알아
아직 가본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아느냐고?
그건 우리가 찾아가야 할 섬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섬이니까
어쩌면 오늘밤 우리는 마침내 그 섬에 도착할지도 모르거든
*** 소설이 시처럼 읽힐 때가 있다. 황순원의 ‘소나기’와 ‘메밀꽃 필 무렵’,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를 처음 읽던 시절 마음이 뜨거워졌다. 언젠가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 한 편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임철우가 제주 4·3사태를 다룬 마음 애틋한 소설 ‘돌담에 속삭이는’을 펴냈다. 그와 나는 동학혁명 60년 뒤의 같은 날 태어난 인연이 있다. 돌담 위에 앉은 세 어린 것의 이름은 몽희 몽구 몽선이다. 토벌대에 숨진 어린 영혼들이 자신들이 살던 돌담 집을 떠나지 못하고, 그 집에 이사 들어온 소설가와 교감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제주의 풍광 속에 스민 아픈 역사와 마주치게 된다. 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제주를 찾는 이들이 읽었으면 싶다.
곽재구 시인
2019-09-06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