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福 / 이종구
160×158㎝, 한지에 아크릴릭, 2002
민중화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민중화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얼마나 많은 시간을 먹었는데
아직도 그립다 하며 빈 수저를 핥는다
식욕을 물려받고 수저 쥐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는지 잊지도 않는다
나는 나의 아름답지 않던 모든 시절을 믿는다
당신의 손에는 너무도 많은 물이 담겨 있다
잡으려 할 때마다 파문이 일고 자리마다 검버섯이 자란다
기어코 손등까지 차오르던 고요
당신에게 건넬 말을 물고 오물대던 순간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먹을 수 있을까
묻던 말만 가득 담긴
빈 그릇 빈 수저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니다 말고 친척집에서 꼴머슴을 살았다. 소 풀을 뜯기고 나무하는 것이 일이었다. 갈퀴나무. 떨어진 솔잎을 갈퀴로 긁어모아 라면 박스 크기로 묶어 애기지게로 날랐다. 갈퀴나무는 화력이 참 좋았다. 바가지 하나의 분량이면 가마솥 밥을 할 수 있었다. 아궁이 속의 갈퀴나무가 환하게 불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엄마가 밥을 얹힐 때 손바닥을 쌀 위에 펴서 물을 맞추는 모습은 늘 신기했다. 당신의 손에는 너무나 많은 슬픈 물이 담겨 있다. 나는 나의 아름답지 않던 모든 시절을 믿는다는 시인의 잔잔한 목소리. 이 젊은 시인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곽재구 시인
2019-07-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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