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애 / 빛(53x46㎝, 캔버스에 혼합재료, 2009)
한국여류화가협회 이사장,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 부회장
출근길
전철 타고
이대로 끝
없이 갈 순 없을까
집도 절도
다 잊어버리고
이대로 끝없이 갈 순 없을까
스물다섯
술에 취해
에이 가버리자, 간다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떠났지만
영등포역에서 내리고 만 기억
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모험이더냐
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사상이더냐
이제 또다시 다 잊어버리고
이대로 끝없이 갈 순 없을까
서울역에서 영등포역까지
***
젊은 날 에이 못 해먹겠다고, 떠나겠다고 다짐한 날들은 얼마나 많았는지. 현실을 떠나 마음의 자유를 얻자 무수히 다짐하면서도 떠나지 못했던 날들 기하였던가. 출판사에서 찾아온 젊은 편집자와 여수 바다를 걷는다. 바다의 맑음과 평화로움에 대해 감탄하던 그가 여기서 책방을 열고 살고 싶다 말한다. 좋은 꿈이네요, 꼭 그러세요.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꼬박 들르지요. 책 많이 살게요. 그가 한숨을 쉰다. 저질러 놓은 일들이 저잣거리에 너무 많아요. 아파트 대출금 상환이며 애들 교육. 이 두 가지 목줄에 걸려 그도 평생 떠나지 못할 것이다. 언제 우리는 떠날 수 있을까. 햇살 환하고 꽃들 피고 새들 노래하는 곳. 보리밥에 물 말아 풋고추 된장에 찍어 먹는 곳. 돈이 신이 아닌 마음과 자연이 신인 곳.
곽재구 시인
2019-07-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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