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엄마 /김경민
50×20㎝, 청동에 아크릴릭, 2008
조각가.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 수상.
구멍 뚫린 양말 /장선자
이모 집에 심부름을 갔는데
모르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나와 선볼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맘에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엄지발가락이 갑자기 멋있어 보이고
맘이 갔습니다
우리는 맘에 들어 자주 만났습니다
하루는 둑길을 걸어 광양까지 갔습니다
그 사람이 자장면을 먹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더니 나가자고 해서
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나중에 돈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자장면 한 그릇
못 사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순천의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 그림도 그리고 시도 썼습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멋진 책을 냈지요. 장선자 할머니의 글, 시일까요, 아닐까요. 시는 은유라고 믿는 전통적인 평론가들에게 이 글은 시가 아닐지 모릅니다. 내 눈에는 시군요. 구멍 뚫린 양말 사이 하얀 엄지발가락이 너무 멋져 보입니다.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존재(발가락)가 보석의 광휘를 얻게 되는 순간입니다. 궁핍을 아름다움으로 바꾼 마음의 미학이 있습니다. 진정성보다 더 우월한 수사는 지상에 없습니다.
곽재구 시인
50×20㎝, 청동에 아크릴릭, 2008
조각가.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 수상.
돼지엄마 / 김경민
50×20㎝, 청동에 아크릴릭, 2008
조각가.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 수상
조각가. MBC 한국구상조각대전 대상 수상
이모 집에 심부름을 갔는데
모르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나와 선볼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맘에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엄지발가락이 갑자기 멋있어 보이고
맘이 갔습니다
우리는 맘에 들어 자주 만났습니다
하루는 둑길을 걸어 광양까지 갔습니다
그 사람이 자장면을 먹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더니 나가자고 해서
다시 걸어서 집으로 왔습니다
나중에 돈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자장면 한 그릇
못 사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순천의 할머니들이 글을 배워 그림도 그리고 시도 썼습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라는 멋진 책을 냈지요. 장선자 할머니의 글, 시일까요, 아닐까요. 시는 은유라고 믿는 전통적인 평론가들에게 이 글은 시가 아닐지 모릅니다. 내 눈에는 시군요. 구멍 뚫린 양말 사이 하얀 엄지발가락이 너무 멋져 보입니다. 허름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존재(발가락)가 보석의 광휘를 얻게 되는 순간입니다. 궁핍을 아름다움으로 바꾼 마음의 미학이 있습니다. 진정성보다 더 우월한 수사는 지상에 없습니다.
곽재구 시인
2019-05-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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