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두부/유병록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두부/유병록

입력 2019-05-16 17:24
수정 2019-05-1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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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유병록

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

따뜻한 살갗 안쪽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

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두부는 식어간다

이미 죽음을 여러 번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

차가워지는 가슴에 얹었던 손으로 이미 견고해진 몸을 붙잡고 흔들던 손으로

두부를 만진다

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 보는 것이다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피가 식어가고 숨소리가 고요해지는 느낌, 영혼의 머뭇거림에 손을 얹는 느낌

이것은 지독한 감각, 다시 위독의 시간

나는 만지고 있다

사라진 시간의 눈꺼풀을 쓸어내리고 있다

*** 내 사는 가까운 바닷가 마을에 ‘옛날 손두부’ 집이 있다. 맷돌에 갈아 만든 따뜻한 두부에 묵은지(김치)를 내준다. 묵은지 손두부와 낭도 막걸리의 케미는 최고다. 낭도 막걸리 한 병과 묵은지 손두부 한 접시 달게 먹고 모르는 우리, 서로 눈인사를 한다. 시 속의 두부는 쓸쓸하다. 피가 식어 가고 숨소리도 멈췄다. 그 쓸쓸한 두부를 가만히 만진다. 당신은 여기 없지만 함께 두부를 먹던 오월의 시간들 영원하다.

곽재구 시인
2019-05-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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