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난쟁이와 저녁식사를/신현정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난쟁이와 저녁식사를/신현정

입력 2019-04-04 17:26
수정 2019-04-05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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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이응노
군상/이응노 34×53㎝, 한지에 수묵
한국화가(1904∼1989).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인간 군상’ 작업에 몰두했다.
난쟁이와 저녁식사를 / 신현정

난 이때만은 모자를 벗기로 한다

난쟁이와 식탁을 마주할 때만은

난 모자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 것은 아주 높다란 굴뚝 모양의 모자였다

금방이라도 포오란 연기가 오를 것 같고

굴뚝새라도 살 것 같은 그런 모자였다

사실 꼭 이런 모자를 고집하자는 것은 아니다

식탁 위에서 모자는 검게 빛났다

오라, 모자는 이렇게 바라보기만 하여도 되는 것이구나

식사를 마친 우리는

벽난로에 마른 장작을 몇 개 더 던져 넣었으며

그리고 식탁을 돌았다

나, 난쟁이 이렇게 둘이서

문 밖에서 꽥꽥 하는 거위도 들어오라고 해서 중간에 끼워 주고는

나, 거위, 난쟁이 이렇게 셋이서 모자를 돌았다.

아끼는 모자가 있는가? 그 모자를 언제 벗는가? 신현정은 말한다. 난쟁이와 함께 밥 먹을 때만 모자를 벗는다고. 높다란 굴뚝 모양의 모자는 권위와 명예와 부의 상징이다. 난쟁이는 누구인가. 가난한 자, 병든 자, 삶에서 소외당한 소수자들의 이름이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그가 지닌 최고의 명예들, 권위들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다면 세상은 충분히 살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식사가 끝나면 나와 난쟁이는 손을 잡고 난로 주위를 돈다. 밖의 거위가 나도 끼워 줘 꽥꽥 소리치면 셋이 함께 손잡고 돈다. 이 윤무 신비하고 사랑스럽다.

곽재구 시인
2019-04-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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