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식/East Side Story
122×91cm, 캔버스에 유채
전 동아대 예술대학 회화학과 교수. 제3회 한국미술작가상 수상
전 동아대 예술대학 회화학과 교수. 제3회 한국미술작가상 수상
그해 책이 가득 든 가방이 있었고
낙서판 같은 탁자마다 술이 넘쳐 흘렀네
괜찮은 사내며 계집이며
가까울수록 잃을까 불안한 심정이며
시대가 혼란스럽고 취직이 힘들수록
쟁기처럼 단단해져야 할 마음이며
‘아침이슬’과 미칠 듯이 파고드는 러시아 민요
‘검은 눈동자’를 들으며 몸 저리게 서러웠네
세월의 징검돌을 밟고
그들은 내 곁을 스쳐 갔네
다시 칠 년 다시
소독약보다 지독한 시간이여
청춘의 횃불이 꺼져 간다
괴로워야 할 치욕도 상처의 저수지도 잊어 가고
우리의 숙명인 열정도 식어 간다
근근이 살아가는 고달픔이란
너는 허기져 삽살개를 찹쌀개로 헛발음하고
시계 사준다는 말이 시체 사준다는 말로 들리고
혼자가 싫어 드라큐라라도 함께 있고픈 주말
사나운 날씨를 못 견뎌 헤매는 오후 네 시
울지 않으려고 웃으면서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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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가 제 덩치보다 10배나 큰 보리알을 물고 간다. 가다가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풀뿌리에 걸려 보리알을 놓치기도 한다. 끙끙거리는 신음소리가 들린다. 일개미는 목포를 출발하여 서울까지 가야 한다. 언제 도착할 수 있을까. 역사의 진보에 대해 생각한다. 일개미의 고난의 행군과 같다는 생각이다. 이 시가 쓰인 시집이 발행된 때는 1996년이다. 놀랍게도 23년 전 상황도 지금과 같다. 청춘의 횃불은 꺼지고 절망은 동무보다 가깝다. 취업을 할 수 있다면 드라큘라의 유혹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세상, 그곳이 어디 있을까. 눈물을 흘리며 우린 우리 자신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곽재구 시인
2019-03-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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