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애기 낳고
칠월백중에 놀았소
비석 치고 편을 갈라 갖고
금성댁네 집에서 여자 남자 쳤든가 몰라
남자하고 비석 쳤다고 남편이 뭐라 하네
오늘 저녁에 뭐라 하고
내일도 뭐라 해서
공동산 몬당에 죽어 블라고 갔네
긴그라 먹고 단것 먹으면 죽은단께
갔더니 뒤를 밟았는 갑써
목구멍에 피가 넘어오게 파내네
보둠고 파낸께
그 와중에도 왜 부끄란가 몰라
동네 탄금양반이 지나가네
섬진강 자락 곡성 산골 마을에 사는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우치고 평생 처음 시를 썼다. 그 시들이 ‘시집살이 詩집살이’라는 시집으로 나왔다. 백중날 젊은 아낙은 동네 남정들과 어울려 비석치기를 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이 계속 궁시렁거렸고 시달린 아낙은 죽으려고 공동묘지 언덕에 올라 농약을 마신다. 남편이 쫓아와 목구멍을 파내는데 보듬고 파내니 참 부끄러웠다. 동네 탄금양반이 지나가며 보니 이 일을 어쩌남. 인간 본성의 정직함과 순수함이 그대로 드러난 시. 사이비 수사와 진정성 없는 언어유희로 범벅이 된 오늘의 우리 시가 이 시 앞에서 참 부끄럽다.
곽재구 시인
2019-03-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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