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가족 이야기/황영성 · 가족/고이케 마사요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가족 이야기/황영성 · 가족/고이케 마사요

입력 2018-09-20 17:30
수정 2018-09-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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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황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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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황영성
가족 이야기/황영성 캔버스에 아크릴, 97x162㎝
조선대 명예교수. 국전 문공부 장관상·이인성 미술상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캔버스에 아크릴, 97x162㎝

조선대 명예교수. 국전 문공부 장관상·이인성 미술상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가족/고이케 마사요

여자가 부엌에서 혼자

조용히 콩깍지를 까고 있다

블랙아이드피라는 이름의 콩이다

프라이팬에 볶아 먹는다

이름 그대로

검은 눈 같은 작은 콩이다

딸이 그 옆을 지나간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딸도 콩깍지를 깐다

심심한 손녀가 부엌에 들어온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손녀도 콩깍지를 깐다

남편이 출장지에서 지쳐 돌아온다

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남편도 콩깍지를 간다

아들이 애인을 데리고 돌아온다

네 사람의 모습을 보고 그들도 콩깍지를 깐다

정신이 들자

조용히 콩깍지를 까고 있는 여섯 명의 가족

테이블 위에는 조용한 콩깍지의 산

“우리가 왜 콩깍지를 까는 거지?”

그리고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가장 조용한 의문 하나가

마지막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살짝 테이블 앞에 앉는다

어릴 적 마을의 이발소에는 엄마 젖을 빠는 새끼 돼지들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판화가 이철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네 그림이 이발소 돼지 그림만큼 쉬웠으면 좋겠구나라고 말했다 한다. 아들은 평생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작업을 했다. 좋은 시는 아주 쉬운 언어로 쓰여야 한다. 이발소 그림처럼 누구든지 한눈에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쉬운데 읽을수록 깊이가 느껴진다면 그 시는 진짜 시라 할 수 있다. 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동주의 ‘별 헤는 밤’ 같은 시가 모범이라 할 것이다. 6명의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콩깍지를 깐다. 오랜 세월 인간이 꿈꾼 평화와 사랑이 이곳에 있다.

곽재구 시인
2018-09-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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