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 / 피골 연습(종이에 연필, 52x37㎝)
주로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화폭에 담는 작가. 1998년 민족예술상 수상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 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 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네 그 속에서
하늘하늘 한 팬티 한 장 어머니
볼에 문질러 보네 안감이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 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도 여자로 살게 하는 무늬였음을
오늘은 그 적멸이 내 볼에 어리네
어머니 몸소 세월로 증명했듯
삶은,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순간이었네
사람들이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팬티들은 싱싱했네
웬만해선 팬티 속 이 꽃들은 시들지
않았네
빨래줄에 하나씩 열리는 팬티들로 뜬 눈송이 몇 점 다가와 물드네
쪼글쪼글한 꽃 속에서 꽃물이 똑똑
떨어지네
눈덩이만 한 나프탈렌들과 함께
일생을 수줍어하곤 했을
어머니의 오래된 팬티 한 장
푸르스름한 살 냄새 속으로
그 드물고 정하다는, 햇볕이 포근히
엉겨 붙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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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 첫 번째가 무엇일까? 미국에서 이뤄진 한 조사에 의하면 어머니는 2위다. 1위는 선물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존재라고 질문을 바꿨으면 답도 달라졌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어머니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뒤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 보낸 선물.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어느 가을날 벼가 익어 가는 들판 길을 어머니와 함께 달린 적 있다. 이 길을 너랑 끝까지 가고 싶구나. ‘예, 끝까지 함께 가요. 어머니’라고 왜 대답하지 못했을까. 시인은 삶을 팬티를 다시 입고 시작하는 순간순간이라고 정의한다. 그곳에 생의 꽃무늬 환하다.
곽재구 시인
2018-09-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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