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선 - 카페에서(캔버스에 아크릴릭 141.5X76.5㎝)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역임.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사랑스런 원숭이 한 마리와 불 켜진 다락방이 있다면
우울한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들 말하지만
양털로 짠 슬리퍼와 다락방 하나쯤은 내게도 있지, 비밥바룰라
창밖으로는 영하의 바람이 불고
폭설로 뒤덮인 거리를 뒤뚱이며 지나는 사람들
지붕위의 풍향계가 얼어붙는 밤이면
몇 알의 양파를 머리맡에 걸어놓으며 잠을 기다리기도 했지만
잠 안 오는 밤이란 이젠 없지 야훼가 그를 여자의 손으로 죽일 거야, 비밥바룰라
싸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자동차들 나는 새벽 세 시를 날아다니네
머리가 헝크러진 너에겐 빠른 비트로 날아다니는 법을 가르쳐줄게 울음을 그치렴
몇 개의 열쇠를 쩔렁이며 커다란 모자 속의 얼굴을 기웃거리며
또 다른 이미지를 찾지만 결국은 다 그게 그거지
깊은 밤이면 점령군의 말과 그림으로 가득한 종이를 눈처럼 찢으며
외곽으로 가는 사람들 눈 내리는 들판엔 꿈꾸는 난민들
너와 나는 사랑하는데 우리는 사랑하지 않네, 비밥바룰라
내게도 돌아갈 다락방 하나는 있지 오, 순정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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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줄을 읽을 때부터 이 시가 좋았다. 사랑하는 이와 알전구 켜진 다락방이 있다면 ‘What a wonderful world!’ 아니겠는가. 시를 읽는 동안 뉴올리언스의 허름한 재즈 카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부두 노동자들의 체취와 맥주 냄새. 삶이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젊은 날 한때 재즈가 퇴폐적이라고 생각한 적 있었다. 모든 예술에서 혁명의 냄새가 풍겨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너와 나는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가. 지상에 시와 재즈가 머무는 이유다. 사랑하는 세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젊은 시인의 눈빛이 사랑스럽다 비밥바룰라.
곽재구 시인
2018-09-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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