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아 너는 뭐냐? 6/최진욱
72.7×60.6㎝,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채색
추계예대 서양과 교수. 일민미술관 등에서 개인전·그룹전 다수
추계예대 서양과 교수. 일민미술관 등에서 개인전·그룹전 다수
누가 오셨나 마루에 비 오시는 소리 듣는다
개울물 소리 읽는다
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 건너간다
짐승 우는 소리에 귀 쫑긋 늘어진다
벌레들이 어디로 꼬이는지 살펴본다
풀을 깎고 뽑는다
나무를 껴안고 빙빙 돈다
밤에 몇 번이고 마당에 나와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릴 때처럼 별들이 흐르고 달이 이울고 뭉게구름이 떠 있고
수제비와 팥죽은 없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을 깬다
가끔 텃밭을 고른다
감나무 잎이 소리 없이 진다
이빨 물고 깨어 있는 서리꽃을 밟아본다
눈물겹게 눈 내리시는 모습을 바라본다
꽁꽁 언 얼음장을 들여다본다
찬물 먹고 숨을 쉰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밥솥이 혼자 말한다
밥이 다 되었으니 잘 저어주라고
===========================================
시골에서 혼자 지낼 때는 며칠씩 입을 다물었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적도 있지만 대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 간혹 개울물 소리를 읽고, 모란과 작약이 피는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헤어진 이는 멀리 있으니 굳이 안부를 물을 필요도 생기지 않았다. 가끔 마루까지 비가 들이닥쳐 내 안의 고요를 들여다보고 돌아갔다. 물은 흐르고, 복사꽃은 폈다가 지며, 달은 찼다가 기울었다. 노모가 헌옷 가지만 남기고 이승 떠난 뒤 수제비도 팥죽도 더는 없었다. 아주 굶을 수는 없어서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전기밥솥에 밥을 지었는데, 전기밥솥이 저 혼자 끓다가 밥이 다 되었다고 소리를 냈다. 오, 고적한 생활 속에서 말 걸어 주는 전기밥솥아, 고맙구나.
장석주 시인
2018-06-02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