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모/봄 밤의 언덕(91×61㎝, 캔버스에 아크릴)
1981년 중앙대 서양화과 졸업, 1985년 홍익대 대학원 서양학과 졸업.
어제의 달을 오늘에게 또 달아주었다
전깃줄에 줄지어 앉았던 검은 새들이
남몰래 한 점씩 떼어가는 걸까
달의 모서리가 한층 수척해 보였다
달빛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의
그림자도 날마다 조금씩 야위어갔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던
허옇게 서리 내린 여자가
티 나지 않게 오랫동안 휘어온
하현의 허리를 일으켜 세운다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선
슬며시 기운을 보태주려는데
그새 더 수척해진 달이
괜한 짓 말라며
한사코 손을 내젓는다
오늘 달빛은
가만히 내버려둬도 되겠다
하현은 모서리가 깎이고 야위어 수척해진 달이다. 하현은 기우는 달이다. 가난한 달이다. 패배한 달이다. 시인은 어쩔 수 없이 야위고, 휘어져 기울며, 가난한 것들을 향해 마음을 나눈다. 야윈 것들, 휘어져 기우는 것들, 가난한 것들은 다 애잔하다. 그 애잔한 것들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에 손을 내밀고 기운을 보태 주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살 만해진다. 저 혼자만 잘사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장석주 시인
2018-03-3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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