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선/두 사람(98×163㎝, 종이에 아크릴)
서울대 미대 서양학과 교수.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잠잘 때 조금만 움직이면
아버지 살이 닿았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아버지가 출근하니 물으시면
늘 오늘도 늦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골목을 쏘다니는 내내
뒤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가양동 현장에서 일하셨다
오함마로 벽을 부수는 일 따위를 하셨다
세상에는 벽이 많았고
아버지는 쉴 틈이 없었다
아버지께 당신의 귀가 시간을 여쭤본 이유는
날이 추워진 탓이었다 골목은
언젠가 막다른 길로 이어졌고
나는 아버지보다 늦어야 했으니까
아버지는 내가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 하셨다
배를 곯다 집에 들어가면
현관문을 보며 밥을 먹었다
어쩐 일이니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외근이라고 말씀드리면 믿으실까
거짓말은 아니니까 나는 체하지 않도록
누런 밥알을 오래 씹었다
그리고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 걸었다
아버지는 오함마로 벽을 철거하는 노동을 한다. 아들은 비정규직이다. 두 사람은 비좁은 방에서 함께 잔다. 좁은 방에서 자다 보니 조금만 뒤척일 때마다 살이 닿는다. 그래서 아들은 벽에 바짝 달라붙어 잔다. 밥 먹고 잠자는 게 사는 것의 전부는 아니지만 사람은 밥 먹고 잠자야 산다. 이 시는 생존의 최소한도를 이루는 밥 먹고 잠자는 일의 고단함을 슬쩍 내비친다. 따지고 보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비정규직이다. 그 비정규직에 아등바등 매달리다가 어느 날 퇴출당한다. 그 퇴출의 불안이 있는 한 세상은 언제나 막다른 골목이다.
장석주 시인
2018-03-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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