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아기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김유민의 돋보기]

배고픈 아기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김유민의 돋보기]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21-12-01 17:34
수정 2021-12-02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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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페이스북이 선정성을 이유로 삭제한 모유수유 캠페인 영상
지난 4월 페이스북이 선정성을 이유로 삭제한 모유수유 캠페인 영상
프랑스 보르도에서 한 여성이 생후 6개월 된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는 이유로 폭행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소포를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여성은 보채는 아기에게 젖을 물렸는데 앞에 있던 여성이 “부끄러운 줄 알라”며 화를 내고 얼굴을 때렸다. 때리는 이를 동조한 사람 중엔 할머니도 있었다.

피해 여성은 “주변 사람들 중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경찰에 신고했더니, 경찰관이 ‘가슴을 어느 정도 노출시켰냐’며 내게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따졌다”고 토로했다. 가슴을 노출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을 겪었고, 그 충격으로 모유가 나오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 엄마들은 피해 여성 이름을 따 ‘마일리스를 지지한다’는 해시태그와 함께 공공장소에서 젖을 물리는 사진으로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관련 게시물을 올린 여성은 “모유 수유 여성을 폭행한 것은 아기를 폭행하는 것”이라며 분노했다. 또 “배고픈 아기는 장소가 어디인지 모른다. 공공장소에서 가슴을 과시하기 위해 모유 수유하는 엄마는 없다”고 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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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도 한 브랜드가 모유 수유 캠페인을 위해 제작한 영상이 선정성을 이유로 페이스북에서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육아의 수고를 현실적으로 전하기 위해 사실적인 묘사를 했지만 ‘여성의 가슴이 자세히 담긴 광고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생후 16개월 아들에게 젖을 물리는 사진을 올렸다가 페이스북으로부터 노출 제한 통보를 받은 여성은 지역 여성들과 함께 항의해 ‘해당 사진을 내리지 않겠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도, 여전히 엄마들은 당연한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최근 배우 네하 두피아는 인구 절반이 여성인 인도의 한 공원에서 모유 수유를 했다가 나이 든 여성들로부터 ‘미쳤어’ ‘그만해’ 등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는 “엄마로서 자연스러운 행동이 왜 사회적 수치심이나 비난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에 의문을 가지게 됐다”며 인도 여배우들과 힘을 합쳐 ‘모유 수유의 자유’ 캠페인을 시작했다. 인권운동가인 란자나 쿠마리는 “인도 남성들은 시도 때도 없이 길거리에 오줌을 싸지만 비난받지 않으면서 여성이 아이에게 수유를 하는 것은 왜 비난받아야 하냐”라고 되물었다.

미국조차 인도와 다르지 않다. 2017년 버니 샌더스의 유세 현장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려 화제가 된 브래드포드는 배고픈 아기는 10분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외쳤지만 ‘혐오스럽다’는 메시지를 받아야 했다. 법과 제도로 그 자유를 보장하지만 수년째 ‘선정적’이라는 논쟁에 휩싸인 공공장소에서의 모유 수유. 가슴골이 드러난 옷엔 열광하지만 가리거나 숨어서 젖을 물려야 한다는 시선에서 언제쯤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세대를 넘고, 국경을 넘어 지속되는 폭력과도 같은 낙인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21-12-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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