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온라인 강의 준비 분투기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온라인 강의 준비 분투기

입력 2020-03-16 17:20
수정 2020-03-17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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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권성우 숙명여대 한국어문학부 교수
조금 전 학부 두 과목의 첫 수업 동영상을 가까스로 완성해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2주 연기 끝에 드디어 개강이다. 생각해 보니 30년 넘게 대학 강의를 해왔지만, 이렇게 개강이 연기되고 그 이후에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된 적은 처음이다. 며칠 전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동영상 강의 제작에 매달렸다.

온라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처음 고민한 것은 어떤 방법을 택하는가의 문제였다. 내게 주어진 상황과 능력을 고려해 여러 가지 대안을 고민한 끝에 비교적 무난하고 단순한 방법을 택했다. 파워포인트에 음성을 입히되, 펜을 사용해 설명하면서 강의를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수업자료로 만들어 놓은 파워포인트가 있었기에 슬라이드 쇼 녹화 기능을 활용하게 됐다. 그래도 마이크 소리, 화면에 얼굴을 드러낼지의 여부, 펜 활용 등 고려해야 할 점이 꽤 있었다. PC에 연결하는 마이크를 하나 구입하고 필기 기능을 위해 딸의 펜마우스를 빌렸다.

이렇게 구상한 온라인 강의를 만드는 과정에서 소리 설정, 슬라이드 쇼 녹화, 동영상 삽입과 편집 등에서 무수한 시행착오와 오류의 순간이 있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유튜브와 네이버를 검색했다. 여러 강의툴을 상호 비교 검증하고 마이크와 동영상 편집, 펜마우스 기능, 화면 디자인 등 온갖 환경과 도구를 테스트하며 헤맨 시간을 보태면 거의 사나흘의 시간을 온라인 첫 수업 준비에 바친 셈이다.

양질의 강의를 위한 욕망이 클수록 동영상 수업자료를 만드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생생한 수업을 위한 동영상 편집과 유튜브는 처음이라 완전히 새로 배워야 했다. 기껏 오랜 시간 변환을 거쳐 만든 동영상 파일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증폭되는 문제점 때문에 페이스북에서 긴급 SOS를 타전해 도움을 받았다.

내 목소리를 계속 듣는 것도 생경한데 얼굴을 드러내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다. 동영상 강의를 만드는 과정은 자신의 낯선 육체성, 또 다른 실존과 정면으로 만나는 과정이었다. 괜한 자의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편해야 자연스러운 강의가 될 것 같아 강의 첫 부분 인사 외에는 음성과 펜만으로 진행했다. 해당 수업시간에 강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예약 공개해, 수강생들과 수업 내용에 대해 실시간 질의응답과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실험이 과연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번 코로나19의 확산이 대학가 강의실 풍경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촉매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미증유의 사태를 겪은 대학이 다시 이전의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이번 사태로 인한 유학생의 감소로 재정이 취약해진 대학은 앞으로 온라인 강의를 대폭 확대해, 강의 구조조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비평가와 학자로서의 내 인생을 결정지은 강의에 대해 추억해 본다. 어떤 도구나 질의응답, 대화, 발표도 없이 강의 내내 오로지 당신의 열정적인 목소리와 분필에만 의존했던 그 수업이 아직도 내게 최고의 행복하고 설레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때로 이런 생각은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복고적인 회고 그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했다. 강의 내용만큼이나 강의의 전달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대다.

상황에 따라서는 3월이 지나도 온라인 수업이 계속될 것 같다. 대학원 수업은 ‘줌’(ZOOM)이라는 화상회의 기능을 사용해서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역시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리라. 이 예기치 못한 변화와 실험이 한국 사회와 대학을 어디로 이끌지 궁금하다. 그것은 필연적인 과정인가? 새로운 퇴행인가? 뉴미디어·정보기술의 유용성과 메시지의 깊이와 열정을 온전히 품는 뚝심과 지혜를 소망해 보는 봄밤이다.
2020-03-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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