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국박서 만난 이집트 유물(하)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국박서 만난 이집트 유물(하)

입력 2020-05-25 21:46
수정 2020-05-26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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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 이집트 고고학자
이집트인들은 미라 제작 과정에서 시신의 장기들을 모두 제거했지만 심장만큼은 남겨 두었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심장을 한 개인의 정수가 담겨 있는 기관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자의 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심장 무게 달기’는 한 개인의 생애를 평가하기에 적절한 조사 방법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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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가 그려진 부조. 말기시대 25-26왕조(기원전 744~525년 경)
서기가 그려진 부조. 말기시대 25-26왕조(기원전 744~525년 경)
그런데 이집트인들은 심장이 심판 과정에서 주인의 의사에 반해 주인이 숨기고 싶은 잘못에 대해 떠드는 불상사도 우려했던 것 같다. 그런 심장의 일탈을 막고자 이집트인들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냈는데, 미라를 만들 때 심장의 위치에 부적을 올려 놓아서 심장이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개똥벌레 모양의 부적을 ‘심장 스카라베’라고 부른다. 이 ‘심장 스카라베’는 재생과 생명 등을 상징하는 케프리를 묘사한 일반적인 스카라베들보다 좀더 크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된 심장 스카라베는 아랫부분이 금박으로 된 화려한 것이다.

문자 섹션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는 로제타스톤에 관한 영상물을 볼 수가 있다. 이름이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로제타스톤은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칙령을 기록하기 위해서 기원전 196년에 만들어진 비석이다. 이 비석은 기록된 내용보다는 기록에 사용된 ‘언어·문자들’ 때문에 특별하다.

비석에는 같은 내용의 칙령이 3개의 서로 다른 언어·문자로 기록돼 있다. 가장 위에는 보통은 상형문자로 불리는 고대 이집트의 신성문자가 쓰여 있고 그 아래 역시 고대 이집트의 문자이지만 형태는 필기체이고 언어적으로도 신성문자를 기록한 언어와는 좀 다른 데모틱(Demotic)이 쓰여 있다. 맨 아래에 기록된 언어·문자는 고대 그리스어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로제타스톤은 1822년 샹폴리옹이 고대 이집트 언어를 최초로 해독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샹폴리옹은 고대 그리스어와, 고대 이집트어와 어원적으로 관계가 있는 중동 지역 언어들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해독에 성공했다. 특히 그의 탁월성은 오래도록 ‘표의문자’로만 여겨졌던 신성문자에도 ‘표음문자’의 속성이 있을 것이라는 발상의 전환에서 나타났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는 문자섹션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서기상’이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형태의 서기상은 고왕국 시대부터 등장했다. 전시물은 중왕국 12왕조 시기로 크기는 비교적 작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는 훨씬 더 큰 크기에 채색도 훌륭하게 보존된 고왕국 시대 서기상을 만날 수 있다.

보통의 서기상들은 실제로 펜을 들고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의 서기상은 허리춤에 필기도구를 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서기의 무릎 부분에는 일련의 문자들이 쓰여 있는데, 이는 망자를 위해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관용적인 제문이다.

이 서기상의 건너편 벽면에 전시되고 있는 한 부조에서도 양반다리를 한 서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양각 부조는 25~26왕조 시대의 것으로, 앞서서 봤던 중왕국 시대의 서기상과는 1300~1200년가량 차이가 나고, 다른 박물관의 고왕국 시대 서기상들과는 무려 1800~1700년가량 차이가 난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 문명은 특정한 문화적 요소가 오래도록 유사한 모습으로 지속되는, 문화적 내구성이 매우 강한 문명이었다.

서기의 좌측 상단에는 보통은 ‘세쉬’라고 읽는 서기를 뜻하는 단어가 쓰여져 있다. 이 글자는 팔레트와 안료를 담는 주머니, 갈대로 만들어진 펜을 담는 통 등 서기들이 사용하는 필기도구들의 모양을 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휴관에 들어갔던 국립중앙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비록 완전한 개관은 아니어서 사전 예약을 해야만 관람할 수 있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답답해져 있을 이즈음 수천 년 전의 시공간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서울 이촌까지 가는 길이 멀다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수천 년 전의 시공간이니 그 여정은 충분히 값질 듯하다.
2020-05-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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