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균미 대기자
“20대 남성, ‘남성은 강하고 성공해야 한다´ 동의 안 해”
“20대 남성 72%, 남자만 군대 가는 징병제는 성차별”
지난 18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개원 36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발표된 ‘변화하는 남성성과 성차별’ 연구보고서를 다룬 언론들의 기사 제목이다. 50대 아버지와는 생판 다른 20대 아들의 생각을 주제목으로 달았다. 연구원이 우려했던 ‘젠더 갈등’을 ‘부각’시킨 제목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연구원은 세미나 당일까지도 연구보고서 전문을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았다. 행여 특정 항목만 뽑아 남녀, 특히 20대 남녀 갈등과 반페미니즘적 정서를 과도하게 다룰까 부담을 느낀 것 같았다. 지난해 12월부터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고 올 들어 여성가족부가 제작해 배포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와 ‘초·중·고 성평등 교수학습 지도안 사례집’을 둘러싸고 잇따라 논란이 일면서 신중해진 여가부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지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남녀를 불문하고 성평등을 지지한다는 의견이 높다. 하지만 성차별과 페미니즘에 대해 물으면 세대별로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여성정책연구원의 남성성에 대한 이번 조사는 저간의 사회 인식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특히 20대 남성의 50.5%가 적대적 성차별 및 반페미니즘 성향을 보였다. 동시에 모든 연령대 중에서 비전통적 남성성이 38.5%로 가장 높게 나타난 것도 20대였다. 상반된 성향을 동시에 갖고 있는 20대 남성에게 우려와 기대를 함께 갖게 되는 이유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도 일반적이지 않은 한국 20대의 성평등 인식에 주목했다.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27개 국가 3만 133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실시한 다양성과 성평등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이 유일하게 20대의 성평등에 대한 지지도가 50대 이상보다 낮았다. 다른 국가들은 20대의 성평등 지지도가 50대 이상보다 10~22% 포인트 높은데, 특이하게 한국만 9% 포인트 낮다고 지적했다.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한국 20대 남녀에서 젠더 담론이 양극화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간극을 좁히고, 성평등 공감 수준을 전격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남녀가 관련된 사건·사고가 터지거나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권과 언론이 너무나도 쉽게 ‘젠더 갈등’ 프레임을 들고나와 극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20대 남녀를 표로만 의식해 갈등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경제학자 우석훈이 ‘88만원 세대: 절망의 세대를 쓰는 희망의 경제학’이라는 책을 낸 게 2007년. 10년 넘게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외쳤지만 시큰둥하다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국회와 정부에서 대책 마련에 나선 걸 곱지 않게 보는 배경이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과거 10년 보수 정부와 다르다는 걸 말이 아닌 제도로 보여 줄 수 있다. 양성평등 전담 부서의 신설이다. 제대로만 한다면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여가부는 오는 30일 국무회의에 8개 부처에 양성평등정책담당관 신설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면 다음달 7일 7~8명 규모의 전담 부서가 생긴다. 부서 명칭을 놓고 이견을 조정하느라 계획보다 한 달가량 늦어졌다. 여하튼 지난해 전담 부서를 신설한 경찰청과 대검찰청에 이어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법무부에 양성평등 전담 부서가 생긴다. 국방부는 여성가족과를 양성평등과로 확대, 개편한다.
양성평등 전담 부서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부서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담보돼야 한다. 여가부는 4급인 담당관에 외부 전문가를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현재까지 복지부만 개방형 직위로 명시했고 다른 부서들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참에 새로 생긴 과장 자리에 내부 인사를 보내 인사 적체를 해소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그 안이한 생각을 접길 바란다. 경험과 사명감을 가진 전문가에게 맡기고 장관은 담당관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각급 회의에서 여가부가 정부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부서로 눈총을 받고, ‘성평등’ ‘여성친화적’이라는 단어조차 꺼내기 불편한 분위기는 대통령이 나서 잡아 줘야 한다.
대기자 kmkim@seoul.co.kr
2019-04-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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