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낙하산 보도 유감’이 유감이다/김경두 경제부장

[데스크 시각] ‘낙하산 보도 유감’이 유감이다/김경두 경제부장

김경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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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9-13 17:34
수정 2021-09-14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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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두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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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운전면허증을 딴 버스기사가 모는 버스를 타고 싶은 이들이 있을까. 모르면 모를까 안다면 절대 타지 않을 거다. 제정신이라면 무면허 기사의 버스를 타는 이도 없을 거다. 버스회사도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이들을 뽑지 않는다.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이게 상식이다.

문제는 이런 상식을 깨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원치 않는데도 혈세가 들어간 20조원짜리 뉴딜펀드의 운용 책임자로 ‘무경험·무자격 낙하산’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출신인 황현선 연합자산관리(유암코) 상임감사가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2본부장에 선임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성장금융은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한 한국판 뉴딜펀드의 운용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증권금융, 산업은행 같은 금융공공기관이 대주주다. 2본부장은 뉴딜 사업에 투자하고 기업 사업재편 등을 진두지휘한다.

황 감사는 투자 운용 경력이 없는 데다 펀드 관리자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도 없다. 무면허 버스기사와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요즘 자율·반자율 주행이 대세라지만 적어도 면허증은 있어야 한다. 참모진이 옆에서 조언해 주고 챙겨 준다고 해도 알아야 면장을 할 거 아닌가. 금융 당국 소통과 가교 역할이 중요하다면 본부장이 아니라 고문 자리를 주면 된다. 어느 국민이 이런 사람을 수장으로 둔 펀드에 투자하고 싶겠나.

청와대도 논란을 키웠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 질의에 “청와대가 관여하는 인사가 아니다. 일부 언론에서 낙하산 이런 표현을 한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민간 회사 인사에 청와대발(發) 낙하산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거라는데, 본질은 외면한 채 말꼬리나 잡는 격이다. 최근 금융공공기관에 낙하산을 타고 우수수 떨어지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대선 캠프 출신인 한유진 전 청와대 행정관이 한국예탁결제원 상임이사로 내정됐다가 낙하산 논란이 불거지자 임시주주총회가 미뤄졌다. 지난달엔 천경득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금융결제원 상임감사로 갔으며, 지난 7월엔 이종석 전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이 한국무역보험공사 감사 자리를 꿰찼다.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장도중 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한국주택금융공사 상임이사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성과 거리가 있는 정권 말 알박기 인사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대선 주자 공약을 발굴하라’는 취지로 발언한 박진규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 차후에 유사한 일이 재발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분위기로는 격노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도 이렇게 격노했으면 싶다. ‘공공기관 낙하산 근절’이 대선 공약이니 명분도 있다. 야당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선임되거나 연임된 금융권 임원 중 32%가 ‘캠코더 인사’(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로 채워졌다고 주장한다. 야당의 정치 공세임을 감안하더라도 낙하산 인사가 있었던 건 주지의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지키지 못해 사과했는데, 낙하산 인사에 대해선 질책도, 경고도, 사과도 없다. 공약도 경중을 따지나.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낙하산’의 뜻은 이렇다. 채용이나 승진 인사에서 높은 사람의 은밀한 지원이나 힘으로 어떤 자리에 앉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청와대와 여당 출신들은 우리가 모르는 취업 비결이 있는 모양이다. 낙하산 보도가 유감이라니, 진짜 유감이다.
2021-09-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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