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주 무용평론가
멋진 무대의 유명 음악가는 아니지만, 고난 앞에서도 희망을 전해 주는 트럼펫 연주자의 뜨거운 마음이 퍼져 나가는 듯했다. 시신이 쌓여 가는 한편에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이탈리아 국민들은 발코니에 모여 낚싯대로 잔을 부딪치며 축배를 들고 합창을 하고 춤을 추었다. ‘발코니 예술’의 탄생이라 할까.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전 인류적 재앙 앞에서 예술은 다시 한번 휴머니티의 고귀함과 강인함의 상징임을 보여 주며 치유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웃들, 가족들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내 앞에 어른거리는 바이러스의 공포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절망 속에서 음악과 춤은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7월 초 프랑스 북부 노르파드칼레에서는 희귀한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3세기를 이어 온 탄광 유적지에 인간 띠를 만들었다. 제목은 ‘공생, 흙더미 위의 부활’이다. 세계문화유산등재 8주년 기념 공연인 셈인데, 아무리 야외에서 행했다고는 하나 봉쇄 조치가 완화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마스크도 쓰지 않은 탓에 불안감이 컸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참가자들은 그 이상을 뛰어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80명의 일반인과 20명의 현대무용가들이 섞여 2미터 간격으로 긴 줄을 만들어 민둥산을 에워쌌다. 상상 속의 에너지 공을 조심스레 손에서 빚어내 파워를 불어넣어서 한 사람씩 차례대로 정상을 향해 힘차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북부 노르파드칼레에서 아마추어 무용수 80명이 춤을 추고 있다. 세계문화유산등재 기념으로 열린 ‘공생, 흙더미 위의 부활’ 프로젝트에서 참가자들은 자연과 함께 하는 치유의 힘을 전달했다.
프랑스3 캡처
프랑스3 캡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대적하는 전설을 시현한 듯한 공연이었다. 이처럼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예술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꼭 공연이 아니어도 곳곳의 일상에서 무용은 활약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 항구 도시에서는 ‘막춤교실’이 성황리에 열렸다. 아침마다 항구에 모여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채 따라 하기 없이 즉흥적으로 ‘미친 듯이 춤추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스트레스와 두려움은 사라지고 활력을 찾는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치유가 있을까.
‘몸이 곧 정신’이라고 했다. 여러 예술 장르 중에서도 특히 몸을 움직여 감정을 표현하는 ‘무용’이야말로 탁월한 치유의 수단이다.
서양의 댄스테라피, 커뮤니티댄스가 발달하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에게는 ‘강강술래’가 있지 않았던가. 여자가 밤에 외출도 못 하던 시절에 떼를 지어 노래를 부르고 밤새 춤을 추면서 삶의 고뇌도 잊고, 문화재급 전통도 만들었다. 우리는 삶의 제전으로 가무를 즐기는 피를 물려받았다.
나가서 춤을 추자. 단 감염 예방수칙은 꼭 지키면서. 야외 또는 넓은 공간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춤을 추자.
이런 규칙이 버겁다면 인터넷 가상 공간에서 만나 시도해 보자. 그조차도 여건이 안 되면 혼자라도 해보자. 방문 걸어 잠그고 신나는 노래 한 곡 틀고 자유롭게 춤 삼매경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어느새 뼈 마디마디에서 바이러스를 이겨 낼 강인함이 용솟음칠 것이다. 다이어트 효과는 덤이다.
2020-07-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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