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작가
이상한 것 투성이다. 그냥 사과하면 될 걸 그게 어렵나? 저 사람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왜 인정하지 않을까? 그 쉬워 보이는 걸 왜 안 할까? 이게 말로만 쉽지 실제론 어려워서다.
내가 틀리거나 잘못했다는 것을 남이 알려주거나 자각할 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방어적으로 태도가 바뀐다. 화가 나든 수치심을 느끼든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방어적으로 대응해서 화를 내거나 책임을 떠넘기거나 모른 척하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방어적 태도를 풀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상당한 인내와 통제, 그리고 심정적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 나는 틀리지 않았고 문제가 없다고 합리화하면 그걸 다 회피할 수 있다.
요즘에 자주 논란이 되는 편향성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편향된 존재지만 자신을 중심으로 타인의 편향성을 판단한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편향된 존재가 아니라고 믿으면 편하다. 하지만 자신의 편향성을 인정하고 편향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은 매우 불편하고 힘들다.
즉,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드는 것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이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짐을 지길 거부한다.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편향성을 강화시켜 나간다.
이상한 사람들이 이상한 결정이나 행동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제대로 된 의사결정에는 제대로 된 상황인식과 판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는 자신의 편향성과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속 스스로 의심해야 한다. 이 때문에 현명한 의사결정에선 자기합리화를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자신을 믿는 것은 결정을 내린 후부터다.
자신을 경계하지 않고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이 과연 상황인식과 판단에 있어 스스로 의심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오히려 이 단계에서부터 자기과신과 자기합리화로 상황 인식부터 그르게 된다. 그런 인식으로 내리는 결정이 제대로 되길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스스로 경계하지 않으면 누구든 이상해진다. 특별히 이상한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짐을 지지 않았기에 자기도 모르게 이상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현시대에 우리 주변에 이상한 사람들이 유독 많아 보이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면 그게 나란 것도 모르고 말이다.
2021-04-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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