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작가
친한 친구가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접하는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사람들은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생각이란 것을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모르는 분야에서 지나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하고 매우 쉽게 공포에 빠지고 매우 쉽게 편견에 빠진다. 잘못된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상정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을 마주할 때나 겪을 때는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 환멸을 느끼곤 한다. 사람에게 지친다는 것이 어쩌면 이런 것을 말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더 진척이 되면 저 한심하고 추악한 존재들과 나 사이에 명확히 선을 긋고 싶은 충동이 든다. 나는 똑똑하고 이성적이고 선한 데 반해 저들은 멍청하고 추악하며 미개한 존재들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위험하다. 우리가 불특정 다수에게 발견하는 온갖 나쁜 점들은 우리가 사람이기에 갖는 한계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비이성적이며 수많은 인지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단점과 한계는 나 자신이 자각하지 못할 뿐 사람이란 존재로 태어난 이상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고 타인을 이끌고 계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인간적 단점과 인지적 한계들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인지적 한계와 문제들이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 여길수록 그렇게 환멸을 느끼는 존재와 더욱더 닮아가게 된다. 자신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것만큼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인 발상이 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고한 이상과 목표,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란 동물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점과 한계는 초월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내 눈에 보이는 타인들과 집단의 비합리성과 인지적 한계, 그로 인한 문제들은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사람이란 매우 불완전하고 모자란 존재들이고 나 자신 또한 그런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존재적 불완전성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열등한 존재로 바라보게 되면 가장 괴상한 존재가 돼 버린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되 믿음은 버리지 말라고 말이다.
사람의 불완전성은 우리를 수없이 좌절하게 하고 상처 입게 만든다. 사회의 진보와 생각의 변화가 느린 것 또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생각·사상, 그리고 사회는 진보하고 발전해 나간다.
점진적인 변화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사람들이 완벽해서 사회와 사상이 발전해 온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느끼는 환멸로 사람에 대한 믿음과 사회적 진보를 포기한다면 그때야말로 진보는 더이상 없을 테니 말이다.
2020-02-2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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