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 당황스러운 속도로 일어나고 있어서, 잠시라도 눈을 떼면 사건의 추이를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다. 하지만 모든 역사적 사건이 그렇듯이 이 일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슬람 공화국이 최근 10여년간 누르고 있던 모순이 이제서야 계기를 만나 터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지난해 11월 이란에서 전국적 시위가 있었다. 몇 개 도시에서는 며칠 동안 정부의 통제력이 사실상 상실됐다. 정권은 시위를 누르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을 사살했고 며칠 동안 인터넷도 차단시켰다. 이 시위는 2017년 12월에 일어난 유사한 시위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2017년의 시위는 악화되는 이란의 경제난을 비롯해 수자원과 농업 위기, 서방을 오가며 호의호식하는 정권 실세의 자녀들에 대한 분노가 모여 벌어졌다. 이런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휘발유값을 올리겠다고 공언하자, 2019년에 다시 시위에 불이 붙었다. 즉, 솔레이마니 장군 사망 이후 조성된 환경은 갑작스러운 변화는 맞지만 새로운 변화는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흐름이 혁명 정권을 뒤흔들고 이란을 자유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개방된 국가로 바꿀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물음표를 그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분명 정권이 2009년 녹색운동을 넘어선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권위적 정권의 후퇴가 그 자체로 자유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지역 중동에서 지난 10년간 수없이 검증된 사실이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이란에서 벌어진 시위는 과거 시위들과는 다르게 자유화를 외치는 중산층보다도 당장의 경제적 곤궁과 불평등과 부정의에 분노한 빈곤 대중이 주도하는 면이 크다. 이들의 분노가 많은 지역에서 정치 변혁의 거대한 동력이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나, 동시에 극단주의와 폭력이 분출해 그나마 있던 질서마저 무너뜨리는 해일일 때도 잦았다. 똑같은 일이 아랍 봉기를 경험한 수많은 나라에서, 무엇보다 대략 40년 전 바로 이란에서 벌어졌었다.
씁쓸하게도 하나는 확실할 것 같다. 당분간 정권과 미국 사이에서 이란 국민은 복잡하게 꼬인 가시밭길을 계속 걸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야톨라부터 시골 꼬마까지 그 누구도 확신할 수가 없다는 것이리라.
2020-01-1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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