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신 건설 인프라엔지니어
그랑앙상블로 대표되는 공공임대 사회주택(HLM)이 고층아파트의 주를 이루는 프랑스에서 자란 저자가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아주 특이하지는 않다. 이 고층 HLM의 거주자로 이민자들이 주로 유입되면서 높은 빈곤율이 나타나는데, 프랑스 대중문화 속에서도 힙합 아티스트들에 의해 자주 묘사되곤 한다. 낡은 건물들이 즐비한 피에르 모렐의 영화 ‘13구역’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1993년 철거된 후 깨끗한 주상복합 단지로 변모된 홍콩의 구룡성채는 이제 볼 수 없지만 파리에는 여전히 그런 풍경이 많이 존재한다.
프랑스인의 눈에 우리네 아파트는 그렇게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아파트와 한국의 아파트는 다르다. 프랑스의 아파트가 건물 한 채를 가리킨다면 한국의 아파트는 단지를 말한다. 최근 지은 아파트는 물론 1기 신도시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 대부분의 건폐율은 20%를 넘지 않는다. 100평 대지면적에 아파트를 짓는다면 건축물은 20평도 되지 않고 나머지 면적은 녹지나 도로라는 말이다. 최근 신축 단지에서는 지상에 도로조차 보기 어려운데 지상은 모두 녹지로 활용하고 차량은 지하로 내려가 효율적인 공간활용을 하고 있다.
에너지효율도 한국식 판상형 아파트 구조는 타워형이나 단독주택에 비해 월등한 장점을 보여 준다. 상하좌우에 모두 이웃과 인접한 로열층의 경우에는 겨울에 굳이 난방을 많이 가동하지 않더라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웃끼리 서로 열을 교환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고압으로 유틸리티를 공급할 수 있으니 전기, 수도, 가스요금도 절약할 수 있고, 공동주택이라 관리인을 따로 두더라도 가정경제에 별 부담이 없다. 그런가 하면 교통의 관점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추게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공공주택이 아닌 민간주택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보니 노후화된 구조물은 자발적인 재건축을 통해 시설안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여전히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을 아파트에 돌리는 분들이 있지만, 그런 논리라면 2005년 이래 부동산 가격이 2배 넘게 오른 호주나 캐나다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십여년 전 프랑스 지리학자의 지적은 현재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서울의 아파트는 지속 가능한 형태로 계속 진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반대로 노후화된 런던이나 파리의 구조물들은 계속되는 대형 화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시는 관상용이 아닌 주거용이다. 물론 일부 문화재 지역은 보존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계속해서 개발하고 정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나는 그 프랑스 지리학자에게 되묻고 싶다. 우리나라 아파트가 어때서.
2019-08-0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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