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진상/김영준 작가

[2030 세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진상/김영준 작가

입력 2019-04-11 23:16
수정 2019-04-12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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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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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중 고객을 일선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다양한 ‘진상고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살펴보면 자신을 진상고객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남을 진상이라 얘기하는데 정작 자기는 정상이라고 모두 주장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진상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 중 진상은 누구인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직장에 다니는 동료의 한풀이를 듣다 보면 회사엔 이상한 상사와 무능하고 개념 없는 후배만 넘쳐 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그 이상한 상사이거나 개념 없는 후배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입은 피해나 손실에 매우 민감하다. 반면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별로 고려가 없는 것 같다. 아니, 좀 더 제대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비대칭적인 인식으로 인해 자신은 항상 피해자라 여기고 자신이 하는 행동은 모두 존중받아야 할 행동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서로 타인에게 아무런 의식 없이 피해를 끼친다.

전에 카페에선 이런 일을 보았다. 한 고객이 테이크아웃 잔으로 매장 내에서 음료를 마시고 있는 것을 직원이 보고 ‘일회용컵은 나가서 드셔야 한다’고 하자 ‘곧 나갈 건데 이런 것도 못 봐주냐’고 불쾌함을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아마 그분은 작년 8월 1일부로 매장 내의 일회용품 사용이 금지되어 있고 적발될 시 매장이 책임을 진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해당 카페의 영업에 위험을 안겨주고 있단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그저 그분은 그 요청이 기분 나빴을 뿐이다.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남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자신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저지른 행동들이 남에게 피해가 될 뿐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럴 의도도 없었고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자신이 남에게 입힌 피해는 용서가 된다. 용서가 되지 않는 건 내가 당한 불쾌함과 피해다. 내가 피해를 입었단 것 자체가 타인의 명백한 의도다. 이러다 보니 다들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 주장하는데 반해 가해를 했다고 사과하는 사람은 없는 문제가 생긴다. 모두가 그렇게 나는 언제나 피해자이며 가해자는 언제나 남이라 외친다.

무언가 잘못돼도 정말 잘못됐다. 한 사회의 일원인 이상 타인과 얽히고 살 수밖에 없고 이러면 내 행동이 타인에게 영향이 없을 수가 없다. 가족 간에도 지켜야 할 예의란 게 있지 않은가? 이걸 감안하면 자신이 절대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살 거라는 가정 자체가 매우 비정상적이다. 진상은 남이 아닌 그런 비정상적 가정을 하는 바로 나다. 내 행동은 늘 남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실례합니다.”, “죄송하지만” 이 두 마디만 더해져도 서로 피해자가 될 일은 줄어들 것이다.
2019-04-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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