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철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현재까지 사람의 유전자는 약 2만 1000개가 발견됐다. 염색체 종류는 23가지, 남성 Y염색체까지 포함하면 24가지이니까 염색체 하나당 대략 1000개의 유전자가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같은 염색체에 자리잡고 있는 유전자들은 서로 ‘연관’돼 있다. 이렇게 연관된 유전자들도 ‘독립’적일까?
청각 장애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발병 유전자는 모두 1번 염색체에 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1번 염색체에 청각 장애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발병 유전자가 있고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1번 염색체에는 청각 정상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정상 유전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자손에게 전달될 생식세포를 만들 때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은 이 두 염색체는 나란히 배열되는데 이때 염색체 일부가 ‘교환’된다. 1번 유전자 안에서 청각 관련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관련 유전자는 서로 매우 멀리 떨어져 위치하기 때문에 교환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교차’라고 한다. 그래서 청각 장애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정상 유전자가 연결된 염색체가 생길 수 있다. 청각 정상 유전자와 알츠하이머 발병 유전자가 연결된 염색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까 연관된 유전자들끼리도 독립적일 수 있다. 그러면 서로 독립적이지 않은 두 유전자는 없는 것일까? 후각수용체 유전자와 면역세포 다양성 관련 유전자처럼 헤어지지 않고 같이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빨간 머리 앤이 주근깨 얼굴에 빨간 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주근깨 유전자와 머리 색 발현 유전자가 4번 염색체상에 매우 가깝게 위치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처럼 두 유전자가 가까이 연관돼 있다면 이 둘 사이에는 교차가 일어나기 어려워서 거의 항상 같이 자손에게 전달된다.
어떤 한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 유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는 이유이다.
한국이 반만년 역사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우리 국민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유연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길 때 대통령이나 책임자만 바뀌면 해결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들 각자가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르게 행동한다면 지금보다 건강하고 살맛 나는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 마치 우리 몸의 유전자들이 그런 것처럼.
2021-08-1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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