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신호를 찾아서] 끝은 끝이 아니다/뉴스페퍼민트 대표

[이효석의 신호를 찾아서] 끝은 끝이 아니다/뉴스페퍼민트 대표

입력 2021-07-05 20:38
수정 2021-07-06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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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뉴스페퍼민트 대표
이효석 뉴스페퍼민트 대표
2020년 개봉한 영화 ‘테넷’에는 흥미로운 시간여행 기술이 등장한다. 바로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만드는 ‘인버전’이라는 기술이다. 인버전된 사람에게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즉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 수 있다. 테넷은 이를 이용해 상상력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매우 복잡한 구조의 이야기를 가진다.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주인공인 주도자와 그를 돕는 CIA요원 닐의 우정이다. 닐은 주도자를 돕기 위해 미래에서 왔고 위기의 순간마다 주도자를 돕는다. 특히 마지막 순간, 닐은 주도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죽기 전 그는 말한다. 자신에게는 이것이 아름다운 우정의 끝이지만, 당신에게는 우리가 함께 겪을 많은 즐거운 일들이 있다고. 닐은 죽었지만 이들의 관계는 이제 시작이다. 그는 미래에서 왔고, 따라서 미래에는 그가 아직 살아 있다. 주도자는 이제 닐을 찾아 그와 함께 많은 즐거운 일들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 만나도록 닐을 다시 과거로 보낼 것이다. 시간여행이 주는 감동의 비밀 중 하나는 이렇게 끝을 끝이 아니게 만든다는 것이다.

시간여행을 다룬 또 다른 명작인 ‘시간여행자의 아내’ 역시 이와 비슷한 종류의 감동을 준다. 이 작품에서 시간여행자인 남편은 갑자기 불특정한 시간으로 이동했다 현실로 돌아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아내의 어린 시절에 나타나기도, 긴 시간이 흐른 후의 나이 든 아내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는 시간여행 중 일어난 사고로 이른 나이에 죽지만 아내에게 그의 죽음은 두 사람 관계의 끝이 아니다. 앞으로 자신이 늙어 가는 동안 죽기 전의 젊은 남편이 그녀를 계속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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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고, 예전의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죽음은 과거의 일상이 더이상 반복될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각인시킨다. 종교는 이 두려움을 해결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바로 부활이라는 개념이다.

시간여행은 끝을 끝이 아니게 만들며, 이는 죽음이 끝이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다. 과학 소설에서 시간여행의 설정은 과거를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로 나뉜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가정할 경우 여러 가지 모순이 생기며, 그래서 ‘테넷’이나 ‘시간여행자의 아내’와 같은 여러 작품들은 과거는 운명이며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간다 하더라도 그 과거를 바꿀 수 없다면, 그게 그저 과거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사진, 영상, 기억을 통해 과거를 종종 회상한다. 만약 과거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회상과 실제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그저 경험의 강도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사진, 영상, 기억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강도의 경험으로 과거를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바로 꿈이다.

며칠 전 나는 꿈에서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날이 진짜 있었던 날인지, 기억의 조합인지는 알 수 없다. 기억은 꿈과 섞이고, 꿈은 다시 기억으로 변한다. 그 꿈에서, 어린 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어머니가 거실에서 피아노를 치시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옆에 서서 듣고 있었다. 꿈에서 깬 나는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이 꿈을 계속 꾸리라는 것을 느꼈다. 또 제발 그럴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 깨달았다. 꿈은 곧 시간여행이다. 그리고 꿈을 꿀 수 있는 한, 끝은 끝이 아니다.
2021-07-06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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