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일본에서 본 제천 참사/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일본에서 본 제천 참사/이석우 도쿄 특파원

이석우 기자
입력 2017-12-24 22:20
수정 2017-12-2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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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도쿄 특파원
이석우 도쿄 특파원
“차고 증명제 하나만 제대로 시행했어도 많은 희생자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을 언급하던 재일한국인 지인이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소방차를 가로막는 불법 주차, 막혀 있는 비상구’는 대형 화재 참사에서 빠지지 않는 주범으로 지탄받아 왔지만, 피눈물 나는 절통한 사건들은 반복적으로 우리 주변을 강타한다.

한국인의 집단 망각증 때문일까, 제도적 장치의 미비 탓일까. 일본의 차고 증명제는 불법 주차를 근본적으로 막는 제도적 장치다. 주차장이 확보되지 않으면 차를 살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이 일본을 지탱하는 대표 산업이지만 차 소유에 대해서는 적잖은 부담을 지게 했다. 아파트 등 공동 주택이라면 차 소유자는 별도의 주차비를 내야 한다. 한국처럼 아파트를 사거나 세든다고 자동적으로 주차장이 제공되지 않는다. 도쿄라면 3만~5만엔(약 29만~48만원)은 훌쩍 나온다. 회사 건물에 주차하기 위해서도 따로 비용이 든다. 집, 회사, 볼일 보러 다니는 곳 등의 주차비 등을 계산하면 한 달 주차비로만 대략 10만엔 이상을 각오해야 한다.

차고제 증명과 예외 없는 단속 등 엄격한 법 집행은 불법 주차를 막고 도심 혼잡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근간이다. “돈 있는 자만 차를 몰라는 말이냐”는 반론이 나올 법하지만 도시 집중도가 우리보다 심각하고, 지진 등 재난 위협 속에서 긴급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는 일본에서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고 이를 받아들인다.

“내수 살리기에 역행한다”란 구실로 우리처럼 차고 증명제를 반대하는 정치인도, 관료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 선의에 기대하기보다는 제도적 장치, 시스템을 통한 문제 해결을 더 신뢰한다.

불법 주차는 생활 속 문제라는 점에서 사회 질서와 준법 정신에도 직접적 악영향을 준다. 우리 아이들은 불법 주차를 당연한 것으로 보고 배우며 자란다. 주차 딱지를 떼이고, 시비하고 삿대질하는 사람들…. “내가 뭘 잘못했느냐. 다른 사람들도 늘 그렇게 하는데….” 길거리에서 매일 보는 장면은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원칙을 압도하는 상황 논리의 승리’를 상징한다.

불법 주차가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아무리 위협해도, 선거로 뽑힌 지자체 단체장들은 인기 없는 정책을 쓰지 않으려고 못 본 체한다. 결국 한국은 불법 주차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수준의 나라로 굳어져 간다.

‘깨진 유리창 법칙’의 지적처럼 경미한 범죄의 방치가 큰 범죄를 부르듯, 불법 주차의 용인이 한국 사회의 준법 정신 하락을 부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참사를 막기 위해 일본과 같은 차고 증명제의 도입 같은 결정은 불가능한 걸까. 이런 조치가 공동체를 위해 불편과 부담을 개인들이 나눠 져야 함을 일깨우는 시발점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제천 참사는 지켜져야 할 것이 외면되고 무시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이고, 현실이다. 일본인들은 엘리트들이 짜놓은 틀 안에서 안심하고, 순응하면서 그 질서를 목숨처럼 지키면서 산다. 한국의 공동체와 공공질서는 개개인들의 제각각 역주행 속에서 무너져 내린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치료하고, 법치 사회의 질적 하락을 더이상 용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과 같은 미봉책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현장에 답이 있지만, 또 그것을 외면할 것인가. 제도와 시스템 구축을 통해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 모두 절치부심해야 한다.

jun88@seoul.co.kr
2017-12-2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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