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돌이켜보면 저우번순은 그때 이미 올가미에 걸려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저우번순의 낙마 과정을 보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공산당이 얼마나 독한지 알 수 있다. ‘부패 호랑이’로 불리던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한 조사설이 나오기 시작한 2012년 말에 이미 저우번순도 끝났다는 평가가 많았다. 10년 동안이나 저우융캉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 주석은 오히려 이듬해 초 저우번순을 베이징을 둘러싼 핵심 지역인 허베이성의 당 서기로 중용했다. ‘쓰촨방’과 ‘석유방’ 관료 수백 명을 하나씩 제거한 뒤 지난해 7월 마침내 저우융캉까지 포박했지만 저우번순은 살려 뒀다. “모종의 거래를 통해 안전을 보장받았다”는 설이 사실처럼 굳어졌다. 하지만 1년 뒤인 지난 24일 저우번순은 베이징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다가 자신의 낙마 소식을 듣고 만다. 그의 당 서기 생활은 생각보다 비참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회의에서는 “장칭웨이(張慶偉) 부서기의 말씀대로 처리합시다”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지난 2월에는 혹독한 자아비판을 하며 충성을 맹세했지만 시 주석은 끝내 올가미를 풀어 주지 않았다.
저우번순의 낙마가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도 혹시 그런 올가미에 걸려든 것 아닌가 하는 느낌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이 잠자는 틈을 타 산업화에 성공했고, 중국이 깨어나는 동안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 유커(遊客·중국 관광객)들이 잠시 발길을 끊는 것만으로도 성장률이 푹 꺼지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전체 수출의 26%를 한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 해 2000개 이상의 한국 법인이 중국에 법인 신고를 했다. 그러나 지금 그 수는 600개 남짓으로 줄었다. 짐을 싸는 법인은 일일이 셀 수가 없다.
그나마 경쟁력을 유지하던 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인데, 삼성 스마트폰은 4위로 주저앉았고 현대차의 재고는 쌓이고 있다. 다른 외국 기업보다 훨씬 수월하게 중국 관료들과 맺었던 관시(關系·연줄)는 사정 바람 때문에 오히려 위험 요소가 됐다. 지방정부가 주던 혜택은 ‘의법치국’(依法治國)이란 명목으로 거의 사라졌다.
얼마 전 샤오미 본사를 취재할 때 한 개발자가 이런 말을 했다. “삼성이나 LG가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도 다 만들어요. 훨씬 싸게 말이죠.” 이 말을 듣자니 주중 한국대사관 공무원의 근심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옛날 공문서를 정리하다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직전에 중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복사기 100대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문서를 봤어요.” 복사기 빌려 쓰던 나라가 이제 우리의 운명을 틀어쥐고 있다. “중국보다 미국”이라고 큰소리 뻥뻥 치고 헤어지고 싶지만, 너무 깊이 들어왔다. 이 거대한 올가미를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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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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