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중국과 북한은 ‘그날’을 거르지 않았다. 이집트의 독재자 무바라크가 시민의 힘에 굴복해 퇴진한 지 채 48시간도 지나지 않은 13일 중국은 부총리급인 멍젠주(孟建柱) 국무위원 겸 공안부장을 북한에 보내 3대 세습을 진행 중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9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화면에 비친 생일선물은 영화 등이 담긴 DVD 4장과 만경봉을 닮은 수석, 서우타오(壽桃·장수를 비는 복숭아) 도자기 등 세 가지였지만 김 위원장은 헤아릴 수 없는 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한 듯하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생일 하루 뒤인 17일 정월 대보름 밤 류훙차이(劉洪才) 중국대사 등 평양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위한 연회를 베풀어 아들인 김정은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 당·정·군 최고지도자들과 함께 직접 관람했다. 정월 대보름은 중국에서도 위안샤오제(元宵節)로 가장 중요한 명절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2009년과 2010년 김 위원장의 생일을 한달여 남겨둔 시점에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북한에 보내 현안 논의와 함께 생일을 미리 축하해 왔다. 이번에는 생일 직전이었다는 점, 직급도 한 단계 상향됐다는 점 등이 다르다. 그만큼 중·북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멍 부장은 김 위원장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화려한 수사(修辭)까지 동원했다. 14일 김 위원장 부자와 만난 그는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동지께서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고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돼 조선 혁명의 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된 데 대해 열렬히 축하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습 문제가 완성됐다는 점을 축하한다는 뜻이다. 김정은을 파트너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멍 부장이 마흔살 가까이 어린 김정은과 파안대소하는 사진은 이제 중국이 김정은과의 ‘정상외교’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중국과 북한은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해 더할 수 없는 밀월을 구가했다.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고, 양국 간 교역액은 30% 넘게 증가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잇단 도발로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북한의 최대 후원자 역할을 맡아 두둔하기에 바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시진핑 부주석 등 중국의 최고지도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선배 혁명가들이 만들어 놓은 중·북 전통 우호관계를 세대를 이어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 부주석은 특히 “위대한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의 중국 명칭)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며 6·25에 대한 세계사적 평가를 뒤집기까지 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북·중의 이런 밀월관계를 감안하면 머지않은 시기에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8살에 불과한 김정은이 아버지와 나이가 같은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악수하는 ‘어색한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반적인 외교관계로 해석하기 힘든 북·중관계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분석이다.
중국이 김 위원장에게 희귀한 생일선물을 보내고, 권력 세습의 완성을 축하하는 한편 김정은을 대화 파트너로 삼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6·25에 참전해 10만명 넘는 전사자를 낸 입장에서 북한과의 혈맹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마오쩌둥의 통치행위에 대한 부정일뿐더러 전사자 후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도 싶다.
하지만 중국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국민의 선거로 뽑히지 않은 권력, 그것도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을 공식적으로 축하한다는 건 중국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은 비록 아전인수 격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기관지를 통해 ‘민주화’가 세계적·시대적 조류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명실상부하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북한의 세습정권이 무너졌을 때 과연 오늘 김 위원장에게 건넨 ‘생일선물’의 의미를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stinger@seoul.co.kr
박홍환 사회부 차장
중국은 2009년과 2010년 김 위원장의 생일을 한달여 남겨둔 시점에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북한에 보내 현안 논의와 함께 생일을 미리 축하해 왔다. 이번에는 생일 직전이었다는 점, 직급도 한 단계 상향됐다는 점 등이 다르다. 그만큼 중·북 우호관계를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멍 부장은 김 위원장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화려한 수사(修辭)까지 동원했다. 14일 김 위원장 부자와 만난 그는 “조선노동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동지께서 조선노동당 총비서로 추대되고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추대돼 조선 혁명의 계승문제가 빛나게 해결된 데 대해 열렬히 축하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습 문제가 완성됐다는 점을 축하한다는 뜻이다. 김정은을 파트너로 삼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멍 부장이 마흔살 가까이 어린 김정은과 파안대소하는 사진은 이제 중국이 김정은과의 ‘정상외교’에 나설 준비를 마쳤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중국과 북한은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해 더할 수 없는 밀월을 구가했다.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고, 양국 간 교역액은 30% 넘게 증가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잇단 도발로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한 북한의 최대 후원자 역할을 맡아 두둔하기에 바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시진핑 부주석 등 중국의 최고지도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선배 혁명가들이 만들어 놓은 중·북 전통 우호관계를 세대를 이어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 부주석은 특히 “위대한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의 중국 명칭)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며 6·25에 대한 세계사적 평가를 뒤집기까지 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북·중의 이런 밀월관계를 감안하면 머지않은 시기에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8살에 불과한 김정은이 아버지와 나이가 같은 후진타오 주석을 만나 악수하는 ‘어색한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반적인 외교관계로 해석하기 힘든 북·중관계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분석이다.
중국이 김 위원장에게 희귀한 생일선물을 보내고, 권력 세습의 완성을 축하하는 한편 김정은을 대화 파트너로 삼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6·25에 참전해 10만명 넘는 전사자를 낸 입장에서 북한과의 혈맹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마오쩌둥의 통치행위에 대한 부정일뿐더러 전사자 후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도 싶다.
하지만 중국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국민의 선거로 뽑히지 않은 권력, 그것도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권력 세습을 공식적으로 축하한다는 건 중국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은 비록 아전인수 격이기는 하지만 지난해 기관지를 통해 ‘민주화’가 세계적·시대적 조류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명실상부하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북한의 세습정권이 무너졌을 때 과연 오늘 김 위원장에게 건넨 ‘생일선물’의 의미를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stinger@seoul.co.kr
2011-02-19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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