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한 소녀의 장례식이 있었다. 9년 전 미국 현대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날인 9월 11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한 ‘정신 이상자’가 휘갈긴 총에 맞아 숨진 크리스티나 테일러 그린. 9살이었다.
지난 8일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한 대형 슈퍼마켓 앞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6명 중 최연소자였다. 장례식장에는 9·11 테러 현장에서 수거된 대형 성조기가 나부꼈다고 한다.
발레와 수영을 잘하고 미국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선수를 꿈꿨던 크리스티나는 초등학교 학생회 임원에 처음 선출돼 40세의 떠오르는 스타정치인인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을 보러 친구 엄마와 함께 슈퍼마켓을 찾았다. 롤 모델인 기퍼즈 의원을 직접 만나 얘기할 수 있다는 설렘은 그러나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애리조나주 총격사건의 희생자들 중에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이들이 여럿 있지만 유독 크리스티나가 관심을 끄는 것은 소녀의 짧은 삶이 가진 상징성과 소녀 그 자체일 것이다. 어린 딸·아들을 둔 부모의 심정으로, 손자·손녀를 둔 할머니·할아버지의 심정으로 크리스티나의 죽음을 보면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안타까워하며 많은 미국인들은 눈물을 훔쳤다.
애리조나 사건이 터지자마자 대부분의 미국 언론들은 정치·사회 전반에 팽배한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독설 정치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범행 동기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언론과 평자들은 보수 진영의 막말과 독설에 손가락질하며 책임공방을 벌였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모식 연설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난 3년간 워싱턴에 살면서 대선 후보시절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하는 모습을 수없이 봤지만 12일 추도식에서 행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TV로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대통령이 된 뒤로 가장 훌륭한 연설이었다.”고 평가했지만 외국인인 기자가 듣기에도 호소력이 컸다.
32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 부분을 9살 소녀에 대한 얘기를 하는 데 할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크리스티나가 생전에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잘했는지 이야기할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크리스티나 또래의 딸을 둔 아버지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바마 대통령은 크리스티나의 희생을 계기로 당파를 떠나 희망과 화합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제 막 친구들을 대표해 학교일을 배우기 시작한 크리스티나가 품었던 미국, 미국의 꿈,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크리스티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고 단호한 목소리로 외칠 때에는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딸 아이를 두고 하는 아버지의 맹세와도 같이 들렸다.
9살 소녀의 희생이 이념과 당파로 갈라진 미국 사회를 이어 주고, 희망과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는 조금은 거창한 생각마저 들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디를 막론하고 기성세대, 특히 정치·사회 지도자들은 다음 세대에게 지금보다는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를 원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아마도 가장 그들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후세가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닐까 싶다.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성세대가 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는 그럴싸해 보여도 실천하기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애리조나 총격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불거진 정치인들의 막말·독설 논쟁을 우리네 정치인들이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매번 반복되는 국회의원들의 몸싸움, 삿대질과 막말. TV 화면을 통해 보는 이런 정치·사회 지도자들을 보면서 “너희들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이 통할까. TV 뉴스를 보지 않는 어린이·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가족사진은 지갑 속에 넣고만 다니지 말고 가슴 속에 새기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닐까.
kmkim@seoul.co.kr
김균미 국제부장
발레와 수영을 잘하고 미국 최초의 여성 프로야구선수를 꿈꿨던 크리스티나는 초등학교 학생회 임원에 처음 선출돼 40세의 떠오르는 스타정치인인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을 보러 친구 엄마와 함께 슈퍼마켓을 찾았다. 롤 모델인 기퍼즈 의원을 직접 만나 얘기할 수 있다는 설렘은 그러나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애리조나주 총격사건의 희생자들 중에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이들이 여럿 있지만 유독 크리스티나가 관심을 끄는 것은 소녀의 짧은 삶이 가진 상징성과 소녀 그 자체일 것이다. 어린 딸·아들을 둔 부모의 심정으로, 손자·손녀를 둔 할머니·할아버지의 심정으로 크리스티나의 죽음을 보면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안타까워하며 많은 미국인들은 눈물을 훔쳤다.
애리조나 사건이 터지자마자 대부분의 미국 언론들은 정치·사회 전반에 팽배한 분노와 증오를 부추기는 ‘독설 정치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범행 동기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 언론과 평자들은 보수 진영의 막말과 독설에 손가락질하며 책임공방을 벌였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추모식 연설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난 3년간 워싱턴에 살면서 대선 후보시절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하는 모습을 수없이 봤지만 12일 추도식에서 행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TV로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대통령이 된 뒤로 가장 훌륭한 연설이었다.”고 평가했지만 외국인인 기자가 듣기에도 호소력이 컸다.
32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 부분을 9살 소녀에 대한 얘기를 하는 데 할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크리스티나가 생전에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잘했는지 이야기할 때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크리스티나 또래의 딸을 둔 아버지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바마 대통령은 크리스티나의 희생을 계기로 당파를 떠나 희망과 화합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제 막 친구들을 대표해 학교일을 배우기 시작한 크리스티나가 품었던 미국, 미국의 꿈,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크리스티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고 단호한 목소리로 외칠 때에는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딸 아이를 두고 하는 아버지의 맹세와도 같이 들렸다.
9살 소녀의 희생이 이념과 당파로 갈라진 미국 사회를 이어 주고, 희망과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주었다는 조금은 거창한 생각마저 들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디를 막론하고 기성세대, 특히 정치·사회 지도자들은 다음 세대에게 지금보다는 살기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를 원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아마도 가장 그들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후세가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닐까 싶다.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성세대가 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는 그럴싸해 보여도 실천하기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애리조나 총격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불거진 정치인들의 막말·독설 논쟁을 우리네 정치인들이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매번 반복되는 국회의원들의 몸싸움, 삿대질과 막말. TV 화면을 통해 보는 이런 정치·사회 지도자들을 보면서 “너희들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이 통할까. TV 뉴스를 보지 않는 어린이·청소년들이 많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가족사진은 지갑 속에 넣고만 다니지 말고 가슴 속에 새기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닐까.
kmkim@seoul.co.kr
2011-01-1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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