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아 미드웨스트대 교수
결혼 전에는 서로 바라보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거워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헤어진 후에도 통화로 수다를 이어 가다 전화기를 베개 삼아 잠이 든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정작 결혼한 이후에는 밤을 지새우며 대화하는 일은 상상도 못 할뿐더러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때로는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건성으로 대꾸를 하다 슬그머니 다른 일을 하거나 각자 스마트폰에 집중하곤 한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무척 중요하다는데 이것이 애정이 식어 가는 증상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러다 여느 오래된 부부들처럼 동지애나 전우애로 버티며 살아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둘 사이에 가끔씩 찾아오는 침묵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남자와 대화의 중요성을 원칙론적으로 내세우며 다가가려는 여자가 수차례의 신혼기 갈등을 겪은 후 깨달았다. 애정이 식거나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침묵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사이가 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아무 말 안 하고 싶을 때는 그저 침묵으로 있어도 전혀 어색하거나 썰렁하지 않은 그런 사이가 진정 편안한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 아닌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하는 침묵의 시간이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간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하는 수행과 기도에는 말을 하지 않는 묵언 수행, 침묵 기도, 멈춤의 시간이 있다. 침묵으로 하는 수행은 말을 함으로써 짓는 온갖 죄업을 떨치고 스스로의 마음을 정화하는 훈련이다. 온갖 소음이 판치고 자기주장이 넘치는 세상에서 침묵하기는 정말 힘들지만 소리가 사라지고 정적이 흐르면 우리는 내면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말문을 닫으면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게 되고, 비로소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게 된다. 볼 것, 들을 것, 말할 것이 넘치는 요즘 오히려 그것들과 멀어져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수행인 것이다. 언젠가 침묵 수련에 참여하며 식사 중에 상대방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식사에만 전념했을 때 재료 본래의 맛과 식감을 오감을 통해 하나하나 예민하게 느끼며 별 생각 없이 늘 먹던 음식의 새로운 맛을 경험한 바 있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모든 일을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 좋을 때는 함께, 각자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서로가 편안하도록 배려해 주는 모습일 것이다. 이제 남자와 여자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어색하지 않은 침묵으로 각자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하며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얼굴 맞대고 쉼 없이 대화를 주고받던 예전의 사랑보다 상대방이 더 좋은 양질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가끔 침묵으로 우리의 시간을 잠시 멈출 줄 아는 지금의 사랑이 더 깊고 편안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의 모습과 움직임, 표정을 통해 소통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1-06-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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