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아 미드웨스트대 교수
호텔 체크인 후 행여 문을 닫을세라 뛰다시피 찾아간 식당에서 그 지역 추천 메뉴인 야크 고기와 현지 음식들을 배불리 먹고 마시다 돌아와 반신욕으로 피로를 풀었다. 내일 일정에 대한 설렘으로 자리에 누웠는데 쉽게 잠에 빠지지 못하고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몸이 무겁고 발열과 두통에 메스꺼움, 숨가쁨까지 더해져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 기온 차로 인한 몸살이라 생각한 남자가 여자를 위해 전기장판을 빌려 와 따뜻하게 수면을 취하게 했는데, 자다 깨 보니 간호하던 남자도 옆에 누워 시름시름 앓는다. 이것이 고산병 증세고, 고산병을 예방하려면 무리한 운동, 과음, 과식, 반신욕 등을 삼가야 했다는 호텔 직원의 말을 듣고야 우리의 사소한 행동이 화를 자초했음을 알았다. 과자봉지나 화장품 용기도 터질 듯 괴로워하고 있는데 사람의 몸도 급격한 기압 변화에 난리가 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약을 구하러 약국을 찾았더니 만병통치라는 허접한 포장의 한약 덩어리를 권한다. 정체 모를 약 앞에서 고민하는 우리에게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꺼내 온 또 다른 약은 짝퉁 비아그라다. 정력제이면서 고산병에도 효과적이라지만 누워 있기도 힘든 판에 출처도 모를 정력제를 털컥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지상낙원이라도 몸을 가눌 수 없으니 이후 일정을 포기하고 마치 추위를 피해 활동 시기를 기다리며 동면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이불을 감고 움직임과 영양 섭취를 최소화한 채 현지 기압에 몸이 적응하기를 기다렸다.
소설 속 샹그릴라는 노화와 죽음에서 벗어나 오래 건강할 수 있고 근심과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마을로 묘사되지만, 현실의 샹그릴라에서 우리는 악몽 같은 며칠을 보냈다. 코로나와 함께한 지난 시간도 어쩌면 기나긴 동면기였다. 갑자기 찾아온 혹한 같은 코로나를 이겨 내기 위해 학생들은 집 안에만 머무르며 컴퓨터와 소통했고, 일이나 사교 모임도 온라인으로 접속하며 외출을 최소화했다. 집콕 생활로 돌봄에 지친 부모들, 친구를 만나지 못한 학생들, 손님이 끊긴 상인들의 아우성이 커지며 심신이 지쳐 가고 있는 요 며칠 지인들의 SNS에 봄소식이 올라온다. 백신 접종도 시작됐으니 이제 조금씩 코로나 동면에서도 빠져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고산병을 된통 앓은 후 맞이한 샹그릴라는 그야말로 이상향이었다. 넓고 푸른 초원에 하늘과 맞닿은 산, 솜사탕처럼 걸린 구름 등 사실 지극히 평범했지만 고통 끝에 낙이 온다는 진리처럼 내 몸과 마음에 해와 달이 뜨니 그제야 낙원이었다.
지인의 사진으로 만난 봄소식에 살짝 밖을 살피니 삭막했던 곳곳에 새 생명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이번 봄이 유난히 더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지난 우리의 동면 같은 시간이 너무나 길고 혹독했던 이유일 게다. 올봄에는 코로나가 조금 주춤해질 것 같은 조짐만으로도 모두의 마음속에 해와 달이 걸릴 것 같다. 어둡고 답답했던 동면기를 밀어내고 새 희망을 비출 수 있도록 모두의 마음속에 해와 달을 품게 할 샹그릴라의 봄이 어서 찾아오기 바란다.
2021-03-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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