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현의 이방사회] “이제 시험 공부 안 해도 돼?”

[박철현의 이방사회] “이제 시험 공부 안 해도 돼?”

입력 2020-12-14 20:00
수정 2020-12-15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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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 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박철현 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지지난주 아내가 메시지를 보내 왔다. ‘미우 핸드폰 확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우는 큰딸이고 올해 중학교 3학년이다. 아직 핸드폰이 없다. 편차치가 꽤 높은 지역의 모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핸드폰을 사 주기로 했다.

아,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기가 우리한테 그러겠다고 했으니까. 원래 고등학교 들어가면 핸드폰 해 주려고 했는데, 그런 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골치 아파졌다. 그 명문 고등학교는 공립이라 시험을 봐서 들어가야 하는데, 모의고사를 치면 간신히 턱걸이 수준이거나 몇 점 모자라는 결과가 나와서 그렇다. 합격 예상률도 딱 절반인 50%이다. 그래서 내기 중간에 굳이 그 학교가 아니라도 비슷한 편차치의 학교에 들어가도 핸드폰을 사 주기로 했다.

그 며칠 후 아내의 메시지가 온 것이다. 이해가 안 됐다. 일본에는 수시라는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추천입학이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1월에 결정된다. 하지만 아내는 핸드폰 확정이라고 보내 왔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아내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 오빠는 모르겠구나. 일본에선 들어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다 따로 원서를 낸 후에 시험을 쳐. 그런데 그 학교에 불합격하면 사립학교를 진학할 수밖에 없는데, 이 사립학교들이 그렇게 좋은 학교가 아냐. 반면 우수한 학생들은 대부분 공립명문 고교로 가려고 하잖아? 그래서 우등생들을 미리 확보하고 싶은 몇몇 사립명문들은 병원(?願)제도라는 것을 이용해서 미리 지원하도록 해 놨어. 이 제도는 시험보단 내신 및 학교생활 위주로 결정해서 점수화를 시키는데 미우가 가고 싶은 사립고 중에 한 군데가 병원제도를 하길래 거기 넣었더니 학교에서 합격이라고 연락 왔어. 고입시험 점수에 상관없이 꼭 우리 학교로 와 달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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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하긴 한국 입시 시스템도 하나도 모르는데 일본 입시를 알 수가 있을까. 수천 개의 학교별 랭킹이 적혀 있는 고등학교 입시가이드가 절찬리에 판매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게 불과 일년 전이다. 그걸 보면서 수험생들은 연구를 한다. 나는 돈 버느라 바빠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알고 보니 아내와 미우, 그리고 중 1인 둘째딸까지 합세해 1년 전부터 입시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가령 이번에 합격한 사립학교는 자기네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합격 기준점이 있고, 병원제도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이 기준점을 넘겨야 한다. 그런데 미우는 아무리 계산해 봐도 2점이 모자랐다고 한다. 성적 점수로 내는 내신등급은 뭘 어떻게 해도 안 될 것 같아 가산점 항목을 보다가 한자검정시험 준2급 자격을 따면 1점이 플러스되고 서클 활동 주장을 하면 다시 1점이 붙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 2점에 올인한 것이다. 어쩐지 한자 공부를 열심히 하고, 또 작년 말에 소프트볼 주장을 한다길래 겉으로는 열심히 하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공부는 어떡하려고 저러지 걱정했었는데…, 딸아! 너는 이미 계획이 다 있었구나.

1년간에 걸친 모녀들의 전략을 듣다 보니 한 편의 웅장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한편으론 웃음도 나온다. 전략집을 한 권 딱 식탁에 놓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장면, 즐겁지 아니한가. 아내가 이 전략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가 고등학교 다닐 때도 이랬었기 때문이다. 병원제도와 추천입학, 공통입시시험 이 세 가지는 변함이 없고, 각 고등학교 편차치도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입시시험을 대비하는 이들에게 적어도 정보량은 모두가 평등하다 할 수 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서비스 문제가 나왔니 마니 하는 논란이 있는 것 같던데, 사실 문제별 난이도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들이 많지 않을까 한다. 우리 집에서, 나 모르는 사이에 일 년간 펼쳐진, 이 전략회의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고.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한국의 입시제도는 왜 자주 바뀌는 걸까. 게다가 바뀔 때마다 ‘변화하는 교육환경’을 꼭 집어넣는다. 웃긴다. 입시제도를 자꾸 바꾸니까 교육환경이 변화하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2020-12-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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