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전 아이가 책을 한 권 사왔다. 2019년 고교수험안내다. 혼자 식탁에 앉아 골똘히 책장을 넘기더니 “아빠, 난 고가네이기타고등학교 갈까 봐”라고 말한다. “그래? 좋은 학교니?”라고 물어보니 “응. 서쪽 지역에서는 위에서 다섯 번째. 편차치는 64로 나와”라고 답한다. 그러자 주방에 있던 아내가 “야, 니가 무슨 고가네이기타냐? 공부를 안 하는데. 이대로 가다간 내가 나온 고다이라고등학교 정도밖에 못 가”라고 일침을 놓는다. 편차치를 보니 고다이라는 53, 즉 중위권이다.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먼저 모든 고등학교가 공립, 사립 가리지 않고 서열이 나뉘어져 있고 그것을 당연한 듯이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뿐만 아니라 인터넷 웹사이트 ‘민나노 고교정보’에 가면 전국 1만여개 고교 서열이 매년 경신된다. 참고로 고가네이기타는 이 사이트에서 전국 758위, 도쿄도 내에서는 634개 학교 중에서 90위로 나온다.
두 번째는 아내가 고등학교 입시시험을 치렀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고교입시제도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내친김에 찾아 보니 대학입시제도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지금 현재 통용되는, 이른바 ‘대학입시센터시험’은 1990년부터 지금까지 실시돼 왔다. 센터시험 점수를 토대로 각 대학에 지원하고 도쿄대학 등 유명 대학은 2차 시험(본고사)를 치른다. 이 전통은 30년간이나 이어져 오고 있다가 2021년부터 대학입학공통테스트시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뀔 전망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목 수가 차이 나고 주관식 필기가 도입된 것을 제외하면 시험 형태 및 그 방식은 기존 센터시험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개정 논의를 2013년부터 장장 7년간 했다. 물론 일본의 학교교육을 보면 엘리트를 위한 초중고대학 혹은 중고대학 일관교 제도도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 근처에 와세다실업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가 초중고대학 일관교의 전형적 예다. 와세다실업초등학교에만 들어가면 일본의 명문대라 불리는 와세다대학까지 바로 들어간다. 100% 추천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비스에 있는 게이오기주쿠요치샤도 마찬가지다. 여기도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와세다와 쌍벽을 이루는 사립 명문 게이오대학까지 무난하게 진학할 수 있다.
이해 가지 않는 불평등한 교육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금수저’들을 대놓고 용인한다. 반면 이러한 상위 1%를 제외한다면 99%는 평등한 환경에서 실력을 겨룬다. 고교ㆍ대학 입시제도가 거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얻는 정보는 거의 동일하다. 큰딸처럼 이런 책을 사봐도 되고, 인터넷만 접속해도 공개 페이지를 통해 수험 정보나 학교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원을 한 번도 다니지 않았다는 지방 학생이 도쿄대, 교토대 등 일본 최고의 명문대에 입학한 사례를 빈번하게 확인할 수 있다. 수험생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머리가 똑똑하다면 충분히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다는 당연하고 기본적인 원리가 일본에서는 실현되고 있다.
박철현 일본 테츠야공무점 대표
큰딸한테 다시 “너, 그 고등학교 들어갈 수 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귓속말로 “공부 안 해도 돼. 나 학생회장이잖아. 후훗”이라고 답한다. 추천입학 정보를 스스로 파악한 네가 엄마나 나보다 훨씬 낫구나. 힘내라.
2019-09-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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